작가의 터치가 시작되기 전에는 티끌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 하얀 캔버스. 그 무결한 캔버스 위에 저 너머 어딘가의 세상을 펼치는 다섯 작가. 그들의 눈과 손, 때로는 입을 통해 탄생한 스물 다섯 점 그림이 성동구 소월아트홀 전시실에 나란히 걸렸다. 

(사)로이사랑나눔회는 지난 9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인근의 소월아트홀 1층 소월전시실에서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를 주제로 한 ‘Beyond the Border Ⅱ' 전시회의 오프닝 행사를 개최했다.

‘Beyond the Border Ⅱ' 전시회의 오프닝 행사. 사진 상 맨 왼쪽이 (사)로이사랑나눔회 안성빈 대표다. 사진=월요신문
‘Beyond the Border Ⅱ' 전시회의 오프닝 행사. 사진 상 맨 왼쪽이 (사)로이사랑나눔회 안성빈 대표다. 사진=월요신문

오후 2시 시작된 전시 오프닝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남우, 임경식, 임현주, 최지현, 탁용준 작가까지 총 다섯 명 중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최지현 작가를 제외한 네 명이 참석했다. 이들의 전시를 보러 온 지인과 관람객들도 오프닝 행사를 관람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 6월 서울 양천문화재단 전시관에서 열린 ‘Beyond the Border Ⅰ'에 이은 시즌2 성격의 행사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다섯 작가 모두는 ‘경추손상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 일상을 영위하기가 어려운 사람들.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물감의 마개를 열고 그 안의 내용물을 짜는 것조차 혼자서는 어렵다. 실제로 이들은 장애인이 된 이후에야 그림을 배우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의 그림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늘 ‘장애’가 보이지 않는 밑그림처럼 배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그림에는 어느 한 공간에서도 장애를 느낄 수 없다.

30년 간 그림을 그린 화가 탁용준 선생은 지난 시즌1, 시즌2 전시회에 어린왕자를 모티프로 하는 작품들을 걸었는데 그것에 대해 “마음껏 날고 싶은 내 마음이 그림에 담겼다”며 “나는 어린왕자 뿐 아니라 여러 그림을 그리지만, 어린왕자가 하늘을 날으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하다. 난 막 하늘을 날고 싶다”고 말했다.

탁용준 작가. 사진=월요신문
탁용준 작가. 사진=월요신문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사막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과 달리, 이번 전시회에 걸린 탁용준 작가의 어린왕자들은 별이 반짝이는 푸른 하늘을 때로는 혼자, 또 때로는 연인과 함께 마음껏 날아다니고 있다. 장애인이 된 이후 전동 휠체어에 고정한 그의 삶은 캔버스 속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린왕자의 자유로움에 가닿아 있었던 것이다.

임경식 작가는 다른 작가들 만큼 손을 사용하기가 어려워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흔히 ‘구족화가’로 불리는 작가다. 그가 이번 전시에 내놓은 작품들 가운데도 ‘어린왕자’가 있다. 그는 지난해 ‘2024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구족화가 임경식 작가의 작품. 사진=월요신문
구족화가 임경식 작가의 작품. 사진=월요신문

임 작가는 “사고가 난 지 30년이 됐다”며 “작업은 13년 전부터 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만 지냈다. 그러다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시는 모습을 보게 됐다. 사실 그림에 그, 자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 내가 이제는 그림을 그리고 전시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동물 ‘양’만을 그린다는 임현주 작가는 미소를 머금은 양에게 이 세상 아름다움을 모두 허락하고 있다. 햇볕과 산들바람, 초원의 잔디와 들꽃들. 어쩌면 작가는 양이 느끼는 그 행복을 보는 이들에게도 나눠 주려는 마음인지 모른다.

그림을 시작한 시기, 신앙도 같이 생겼다는 김남우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예수의 그림과 돼지의 그림을 나란히 걸어 눈길을 끌었다. 구약에 등장하는 나쁜 이미지의 돼지가 어쩐지 자신과 닮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꼭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김 작가는 “행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어쩐지 그의 그림 속 돼지들은 한 마리도 빠지지 않고 웃고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사)로이사랑나눔회 안성빈 대표는 “오늘 이 자리는 제가 평소 알고 지내던 작가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많은 분들께서 함께 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작품 하나하나에 행복과 희망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와 성동문화재단, 그루터기교회가 후원한 이번 전시회는 오는 13일까지 이어진다. / 월요신문=박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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