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분별이 서툰 아이도 아니다. 다 큰 성인들이, 그것도 여러 명이 마음을 모아 한 사람을 오랫동안 괴롭히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그들 때문에 애지중지 키운 딸을 잃은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단장(斷腸)이 끊어진다’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겪어보지 않은 이는 결코 알 수 없는 심정, 그 절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난 1년,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 몸부림 치며 살았을 한 엄마는 거리로 나섰다.
바로 故 오요안나 씨의 어머니, 장연미 씨다.
그는 사랑하는 딸의 억울한 죽음을 뒤로 하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15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상암동 MBC 정문 앞, 작게 마련된 분향소에는 스물여덟 나이에 멈춰선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하얀 국화꽃과 향로가 지키는 그 앞에서 추모객들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며 유족에게 보이지 않는 위로를 건넸다.
그 옆, 어머니 장 씨는 “불쌍하게 죽은 내 새끼의 뜻을 이어받겠다”며 몸무게가 6kg 넘게 줄어든 상태로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 누워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가 단식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딸을 괴롭힌 가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MBC라는 조직이 만든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상캐스터들을 프리랜서로 고용한 탓에 끊임없는 경쟁과 견제가 이어지고, 그 속에서 요안나는 지쳐갔다.
장 씨는 “제2, 제3의 요안나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기상캐스터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딸을 괴롭힌 가해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기를 바라는 단식이기도 하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원망과 분노도 크겠지만, 결국 구조가 문제였다. 기상캐스터들이 더는 프리랜서가 아닌 정규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장 씨의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故 오요안나 씨의 죽음은 지난해 9월, 세상에 뒤늦게 알려졌다. 그는 선배들의 끊임없는 괴롭힘 속에 “내가 그렇게 최악이냐”라며 엄마에게 눈물로 호소했고, 일기장에는 신앙으로 마음을 붙잡으려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유서에는 “사는 게 너무너무 피곤하다”는 문장과 함께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절망이 기록돼 있었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발언이 반복됐다”며 괴롭힘 사실은 확인됐다. 그러나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일부 가해자와의 계약만 해지됐을 뿐, 다른 이들은 재계약했다. MBC는 최근 “기상 기후 전문가 제도를 도입해 정규직으로 뽑겠다”고 밝혔지만, 유족은 “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 와중에 1주기를 맞아 일부 기상캐스터들이 검은 옷을 입고 방송에 나서자, 유족은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으면서 무슨 추모냐”며 또 한 번 가슴을 내리쳐야 했다.
장연미 씨의 단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제2, 제3의 요안나는 없어야 한다”는 절박한 외침. 이제는 사회와 조직,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할 차례다. / 월요신문=박윤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