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팀장님 표정이 너무 변했다’고 하더라. 한때는 신이 내려준 직장이라 믿었던 곳인데,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이라곤 탈락 통보와 정신과 약뿐이다.”

서울시 위탁기관인 '동남권 서울특별시 노동자 종합지원센터'에서 팀장을 지냈던 유상석(57) 씨는 지난 9월 19일, 센터 앞에서의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간판을 마주한 자리에서 꼼짝 없이 여드레를 앉아 있었다.

가락시장역 4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동남권 서울특별시 노동자 종합지원센터' 앞에서 단식 시위로 자신이 당한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 중인 유상석 씨. 센터는 통합으로 9월 간판을 내린 상태다. 사진=월요신문
가락시장역 4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동남권 서울특별시 노동자 종합지원센터' 앞에서 단식 시위로 자신이 당한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 중인 유상석 씨. 센터는 통합으로 9월 간판을 내린 상태다. 사진=월요신문

그는 자신이 당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故 오요안나 전 MBC 기상캐스터 유족과 연대하기 위해 '단식'을 선택했다. 요안나의 어머니 정연미 씨의 단식투쟁 소식을 듣고 피어오른 결심은 즉각 실행으로 옮겨졌다.

10일 만에 체중이 10kg이나 빠졌지만 그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방치된 제도 속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라고 말했다.

유 씨가 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배달 노동자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라이더들의 산재 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현장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며 사회적 의제를 만들던 그를 전임 센터장이 영입하면서다.

많은 성과를 냈다고 자부하며 근무를 이어갔지만, 지난해 1월 불거진 사건이 그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그는 당시 센터장이 '개인 카카오톡 사용'을 문제 삼으며 카톡 프로그램 삭제를 강요했다고 회상했다. “나만 지우는 건 불합리하다”며 반발했지만, 이후부터 보고서 지적, 근무 시간 문제 등 사소한 트집이 이어졌다고 했다. “직접적인 욕설이나 폭행은 없었지만, 은근하게 괴롭히는 ‘블링’이 시작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법률 지원을 담당하는 선임 팀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두 달 가까운 침묵뿐이었다. 오히려 이후에는 선임 팀장으로부터도 부당한 지적과 압박이 이어졌다.

유 씨는 결국 한국노총을 찾아가 자신이 당한 일들을 신고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가해자는 ‘징계 외 처분’이라는 사실상 경징계를 받았고, 피해자인 자신만 약을 먹으며 버티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센터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데, 정작 내부의 괴롭힘은 덮였다.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고, 그 사이 나는 정신과 약 없이는 버티기 힘든 사람이 됐다”고 토로했다.

지리하게 이어져 온 상황은 센터 통합 과정에서 더 악화됐다.

그는 6년간 이룬 증명 가능한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10분 남짓한 면접 끝에 탈락 통보를 받았다.

“으레 보는 면접이라고 알고 있었다. (센터 기존 직원들에 대한)처우 관련 예산은 다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같이 간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도 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모두 합격했는데, 나와 (가해자인)센터장만 떨어졌다. 그리고 센터장은 그만두기로 돼 있던 터라 사실상 나만 떨어진 것이다.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불편한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 배제된 것이다." 이 말 끝에 그는 지친듯 고개를 떨궜다.

유상석 씨의 단식투쟁 현장에 내걸린 시위 피켓. 사진=월요신문
유상석 씨의 단식투쟁 현장에 내걸린 시위 피켓. 사진=월요신문

유 씨는 가해자 뿐 아니라 서울시와 노동계를 향해서도 거침 없는 비판을 쏟아 냈다.

그는 “서울시는 수탁기관에서 벌어진 괴롭힘을 사실상 방치했고, 노동계도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조차 알려주지 않고, 개인정보를 이유로 징계 내용을 가린다. 피해자는 낙인찍히고, 가해자는 사실상 면죄부를 받는 구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서울시 위탁기관은 100%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만큼 관리 감독 또한 철저해야 하지 않나. 더군다나 시의회에서는 시 공무원과 동일한 기준으로 위탁기관 직원을 보호하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례가 발의 돼 있는 데도 어느 것 하나 프로세스 대로 지켜진 게 없다”며 관계 공무원 등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지난 9월 30일, 센터 간판이 내려가는 날 유 씨는 센터 앞에서의 단식 농성을 종료했다. 하지만 싸움까지 멈춘 건 아니다. 그는 서울시청과 서울시의회 앞에 자리를 깔고 계속해서 자신이 겪은 직장 내 괴롭힘을 알릴 계획이다.

지난 7월에는 고용노동부에 재진정을 넣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법적으로 잘잘못을 가리겠다는 다짐이다.

“끝까지 참고 싸우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온다. 이번에는 반드시 가해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 이제는 진심어린 사과도 늦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가해자의 행동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다”

10월 1일자로 그는 ‘백수’가 됐다. 예정된 일이었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故오요안나 씨의 어머니 정연미 씨와 유상석 씨. 유 씨는 오 씨 어머니와 연대해 나갈 예정이다. 사진=유상석 씨 스레드 @yoosangsuck
故오요안나 씨의 어머니 정연미 씨와 유상석 씨. 유 씨는 오 씨 어머니와 연대해 나갈 예정이다. 사진=유상석 씨 스레드 @yoosangsuck

그런 그가 10월 1일 故오요안나 어머니 정연미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요안나 어머니와 이야기 나누고 연대하기로 했다"며 자신이 열심(熱心)이 진심 이라는 것으로 증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부탁을 전했다. "잘 부탁한다. 많이 힘들어 하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 월요신문=박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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