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조규상 기자]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무노조 경영 포기를 선언하며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형량 감경의 명분을 삼기 위한 ‘말 뿐인 사과’라며 평가절하 한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사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얕은 눈속임으로 보지 않는다. 이 부회장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지 싶다.

물론 이 부회장은 과거 메르스 사태 때도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삼성서울병원발 메르스 확산에 대한 그룹의 책임을 이야기했기에 지금과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이 부회장의 사과에는 그 동안의 논란에 대해 자신이 문제의 주체라고 인정하며 변화된 모습을 약속한 것이 담겼다.

우선 경영권 승계 논란과 관련해 이 부회장은 “최근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데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며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못을 박았다.

노사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선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민사회 소통과 준법 감시에 대해선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와 견제가 그 본연의 역할”이라며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며 “그 활동이 중단 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지난 3월 11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이 부회장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한 사안을 모두 인정하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 부회장이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시대가 변해 시민사회와 언론, 국민들의 날카로운 감시망을 피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한국 경제도 위기에 처했다. 한국 경제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거대한 전환점에서 삼성의 역할은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는 이 부회장의 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섣부른 비판 보다 철저한 감시와 함께 따뜻한 응원이 필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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