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개헌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정권 2인자격인 이재오 특임 장관이다. 이 특임 장관은 지난해 7월 재보선을 통해 원내 복귀한 이후, 줄곧 이 대통령의 영(領)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개헌론에 불을 지펴왔다. 급기야 이 특임 장관은 이번 18대 국회 임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 여당의 지도부까지 강하게 압박하며 개헌론을 공론화하는 한편, 개헌 의총이라는 초유의 멍석을 깔기도 했다. 문제는 개헌론을 접한 일각의 시각이 곱지 않은데다, 이 특임 장관의 분투에도 불구, 쉽게 불이 지펴지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이 특임 장관의 일성은 오로지 ‘개헌’이다. 올해가 아니면 안되고 또, 연말쯤엔 수요가 더 커질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다. 이 특임 장관의 최근 입장은 소위 ‘나 홀로 개헌’도 불사할 수 있을 만큼, 완강하기까지 하다. 개헌론을 통해, 이재오 특임 장관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개헌단상17, “나는 개헌을 위해서 가장 강력한 상대와 맞서겠다 나는 다윗이고 나의 상대는 골리앗이다”’ 한나라당이 소위 개헌 의총을 마치자 마자, 개헌을 주도하고 있던 이재오 특임 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내놓은 이른바 ‘개헌 소회’다.

 

이재오, 수적 우위 자신감 피력

 

한나라당은 지난 8일과 9일 양일간에 걸쳐, 개헌을 둔 의원총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오는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당내 주류를 점하고 있는 친이명박계에서는 이 대통령의 공개적 요구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개헌론을 설파하며 공론화에 힘을 쏟았다.

 

반면, 주류와는 큰 입장차를 보인 측도 적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친이계와 대립각을 세워온 친박근혜는 물론이고, 마땅히 소속이 불분명한 일부 의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게 전개되면서 개헌론은 정치권의 화두가 되기 이전 여당이 내홍을 앓을 수 있는 화근으로 자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헌 의총을 바라본 이재오 특임 장관의 입장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초, 개헌론이 이 대통령에 앞서 이 특임 장관의 입을 통해 공공연히, 드러난 만큼, 그의 행보는 곧 정치권엔 개헌의 불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와 관련해서 한나라당의 지난 개헌 의총 분위기는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개헌 추진과 관련해서는 일말의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는 게 이 특임 장관의 분석으로 엿보인다. 이는 우선, 발언에 나선 의원들의 입장이 적어도 개헌의 당위성에서만큼은 큰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친이계를 중심으로 개헌 찬성 입장이 적지 않게 제기되면서, 수적인 우위에서 ‘해볼 만 하다’는 판단이 들었을 것이라는 게 이를 지켜본 관계자들의 말이다.

 

실제로 친이계 김성동 의원은 발언을 통해, “개헌의 당위성에 동의하는 발언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정치와 정략은 백지 한 장 차이다”며 “포괄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17대 국회 당시 6개의 정당의 원내대표가 합의발표 했으면 그 당위성에 공감하면서 오히려 시기와 배경을 따지려고 하는 것 자체가 정략적인 접근이다”고 말해, 추진에 찬성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

 

제2 세종시 사태, 가능성 커

 

같은 계파 소속의 진성호 의원은 오히려 한술 더 떠, “기본적으로 개헌에 대해서 당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를 하되, 전문적인 태스크포스가 필요하다”면서 “당의 공식적인 논의 후, 야당과의 합의 수순을 밟는 것이 맞다”는 방법론까지 제기했다.

 

조해진 의원 역시,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데 이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만큼 너무나 많은 책임이 부하 되어 있기 때문이다”며 “대통령에게 주어진 많은 책임과 권한 중에 상당부분에 국회 재량권을 부여해 큰 틀에서 중지를 모을 수 있는 토양과 환경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러한 친이계의 이른바 ‘전폭적’ 지지가 이어졌다는 것은, 당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주류 입장에선 상당부분 고무될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일부 의원들의 경우 당내 개헌을 논의할 수 있는 공식 기구를 두자고 제안한 것과, 야당과의 합의 수순 등 한 단계를 넘는 전략적 방안까지 마련되기도 했다는 평가다.

 

이처럼 당내 주류 세력의 의기가 투합된 마당에 이 특임 장관의 개헌 드라이브가 멈춘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있다. 개헌이 공론화할 경우, 한배를 타고 있는 친이계의 의기투합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얼마나 많은 수의 반발과 그에 따른 강도 수위가 얼마나 될 것이냐로 모아진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바로 친박계다. 개헌 의총이 마무리되고 당내 개헌 특위가 구성될 것이라는 말이 기정사실로 굳어졌지만, 박 전 대표의 입은 오랜전부터 굳게 닫혀 있었다. 의총기간에도, 박 전 대표는 물론이고 일부 친박계 의원들만이 자리를 해온 터,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읽기란 여간 힘들 것이 아니다

 

하지만, 친박계의 대표격으로 의총에서 발언에 나선 의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렴풋이 나마 박 전 대표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의총에서 친박계 이해봉 의원은 “개헌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면서도 “당은 책임여당으로서 정권재창출의 임무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개헌 타당성의 명분론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단일안, 당론 도출까진 험로

 

그는 먼저 “시기적으로 이 개헌이 가능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임기 초에 동력이 있을 때 했어야 할 개헌 시도가 지금은 오히려 동력을 상실했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무엇보다 야당과의 합의가 불투명하다는 점과 민생을 바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들어 친이 측에 “개헌을 계기로 정치세력화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는 강한 의혹을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이 의원의 말처럼, 친박 측은 현재 개헌론이 현행 정국을 흔들기 위한 모종의 정략적 술수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는 이미 개헌론이 제기될 당시 도처에서 제기된 이른바 ‘개헌 음모론’의 일종이다. 친이계가 사실상의 당내 공론화 자리를 통해, 개헌 논의기구 구성과 아울러, 구체적인 개헌안 논의에 들어갈 경우, 사정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개헌론을 1차적으로 한나라당내 논란으로 축소해 바라볼 때 상대적으로 수적 열세에 놓인 친박계의 운신이 쉽지 않다는 점이 간과될 수 없다는 것. 한나라당을 통틀어, 100에서 많게는 120석에 이르는 친이계가 수적 우위를 내세워 개헌론에 불을 붙인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 이 특임 장관을 포함한 핵심부의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는 이해봉 의원의 경계가 드러난 말과도 맥을 같이 하는 대목이다. 친이계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사분오열 조짐을 보이는 등 난맥이 예상된 시점,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특임 장관의 울타리 단속 효과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 그 중심에 바로 개헌론이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더욱, 당초 개헌론이 불거질 당시 공개적으로 반발했던, 지도부의 일부 인사들의 목소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점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당내, 친이계의 결속이 이 특임 장관을 중심으로 크게 강화됐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시각이다.

 

친이계로선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정국주도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는 극단적 카드인 셈이다.

 

친박계 조직적 반발도 배제 못해

 

하지만 이번 개헌 카드가 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산을 넘어야 한다. 이는 의총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드러낸 친박계 외에도, 일부 대권 주자로 분류된 인물군에서도 파열음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의총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보좌관을 역임한 바 있는 차명진 의원은 공개 발언이후 별도의 기자회견을 자청해 “개헌의 목적이 좀 불분명하고 지나치게 다양하다”며 개헌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권력구조에 손을 대려면 권력구조의 정점에 있는 인사가 제안을 해야 된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말씀을 해야 된다. 이것은 의원들이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해 개헌 논의에 난색을 표했다.

 

또 다른 대권 주자로 손꼽혀온 정몽준 전 대표도 “여의도정치가 현실을 모르고 민생을 외면하는 낭떠러지에 서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하며 “국회는 열리지 않고 기 싸움에만 열중한다면 국민들의 분노는 더 깊어진다. 민생과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 민생 우위론을 펴기도 했다. 정 전 대표의 발언은 주로 야권의 국회 등원 보이콧을 두고 한 말로 이해되긴 하지만, 민생과 개헌으로 양분된 현행 정치 구도에서는 얼핏 개헌 비판론으로 인식될 여지도 안고 있다.

 

이처럼 한나라당으로선 개헌 논의 자체가 내부에서부터, 극심한 반발을 예고하는 만큼, 수적인 우위가 확보됐다고 해도, 별반 안심할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더욱, 개헌 특위가 꾸려져 논의를 시작될 경우, 내재된 갈등이 표면화할 수 있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자칫 당론은 고사하고, 여파가 오는 4월로 예고된 재보궐선거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부담은 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일각에서 친이계의 개헌 공론화가 오는 4월 선거를 기점으로 그 성패가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선거의 성패에 따라 개헌이 급속히 수그러들든지, 반대로 강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재오 특임 장관을 중심으로 친이계의 개헌의 날은 칼집을 떠난 것으로 분석되면서 향후, 칼날의 향배에 귀추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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