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순 한국 약선차 협회 부회장.
한병순 한국 약선차 협회 부회장.

어느 마을에 소문난 의원이 있었는데 왕진을 나가는 날이 많아 모든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가 없었다. 유명한 의원이었기에 의술을 배우겠다는 제자들도 각처에서 몰려들었으나 쉽사리 의술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하루는 의원의 아내가 부엌일을 하러 들어갔다가 땔감으로 쓰려던 풀 더미를 발견하고 맛을 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배를 움켜쥐고 급히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날도 역시 의원이 왕진을 나갔던 터라 아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평소에 '모든 풀은 약으로 쓰일 수 있다'고 했던 의원의 말이 생각나 땔감으로 쓰려던 풀을 환자에게 먹여보니 곧 배가 편안해졌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후 아내는 의원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어떤 환자에게든지 다 똑같이 이 풀을 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병이 나아 돌아갔다.

어느 날 아내에게 치료를 받았던 한 환자가 의원에게 약값을 내미니 의원은 의아해 하며 자초지종을 물었고, 그 후 아내가 치료해 주었던 여러 환자들을 모두 불러 일일이 그 증상을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이 풀이 각각의 증상을 모두 치료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이 후로도 여러 다른 증상에 이 풀을 썼는데 모두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풀은 맛이 달았으므로 '맛이 단 풀' 이라는 의미로 '감초' 라고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약방의 감초'라고 할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감초이다. 흔히 모든 일에 간섭하고 참여하려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감초를 다른 이름으로 '국노(國老)'라고도 하는데 나라의 원로라는 뜻으로 결국 모든 처방에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약초라는 의미이다.

감초는 3~4년 재배해 가을에 수확하는 다년생 콩과 식물이다. 키가 1m 정도 자라고, 땅 속으로 아주 깊게 뿌리를 내리며, 이 뿌리가 약용으로 쓰는 감초이다. 대체로 건조하고 추운 지역인 유라시아 지역에서 재배하고 있으며, 그 중 내몽골 지역에서 나오는 양외감초가 가장 우수한 품질로 평가되고 있다. 근래에는 우리나라 제천과 순창에서도 재배에 성공해 수입 감초와 경쟁하고 있으나 색깔이나 크기, 효능면에서 수입 감초와 비교해 논란이 많다.

감초는 달고 평하며 독이 없고 오장육부로 귀경한다, 생감초(生甘草)는 다른 약재들의 독성을 완화하고, 약성을 조화시켜 약효를 잘 나타나게 하며, 혈맥을 잘 통하게 한다. 자감초(炙甘草)는 구운 감초로 대체로 밀구(蜜灸, 꿀을 넣어 볶음)해 쓰는데, 속을 따뜻하게 하거나 비위(脾胃)를 보(補)하고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감초는 기(氣)를 보하는 작용을 해 비장의 기능을 항진시키고 기운을 나게 하며, 통증을 멈추게 하고 열독을 없앤다. 또한 담을 삭이고 기침을 멈추게 하며, 피부의 알러지를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하지만 감초의 주성분인 글리시리진(glycyrrhizin)이 혈압을 상승시키고 근육병을 일으킬 수 있으며, 과다하고 장기간 사용하면 나트륨을 높여 부종이 생기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무리하지 않으면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감초는 많은 처방에 사용되지만 군약(君藥)으로 쓰는 경우는 흔치않고 대체로 좌사(左使)로 사용되는데, 군약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예가 '자감초탕'이다. 자감초탕은 자감초8g, 건지황(酒浸), 계지, 마자인, 맥문동 각 6g, 인삼, 아교주 각 4g, 생강5편, 대조3개로 구성된다. 기운과 혈액의 부족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심계(心悸)와 맥박이 일정치 않은 부정맥이 나타나며 몸이 여위고 숨이 가쁜 데, 허열(虛熱)과 기침이 나며 피가 섞인 가래(血痰)가 나오고 가슴이 답답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데 쓴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오는 부정맥, 심장 판막 장애, 교감 신경 항진증, 갑상선 기능 항진증 때의 심계항진 등에 쓸 수 있다. 물과 청주를 3:1의 비율로 섞은 데에 달여 절반 정도 쫄면, 건더기 약재는 건져 버리고 다시 아교주를 넣고 달여서 따뜻하게 해 음용한다. / 한병순 한국 약선차 협회 부회장·서울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생활한방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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