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조규상 기자] 튼튼하고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목재, 벽돌, 단열재, 타일 등 건축자재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겉은 화려하고 웅장해 보이는 집이라고 할지라도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면 그 집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건축자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둥, 벽, 바닥, 지붕 등 건축물의 구조체를 형성하는, 즉 뼈대를 축조하는 골조공사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한 시작이다. 골조란 건축물이 완성되면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부실한 경우 건물을 주저앉게 할 수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기초적인 이해와 뼈대에 대한 중요성은 비단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법의 경우에도 기초와 뼈대가 부실하면 유명무실한 법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지난해 시행된 레몬법은 대표적인 예다.

레몬법의 취지는 소비자 보호에 있다. 한국형 레몬법 또한 '소비자가 차량 구매 후 중대한 하자가 2회 발생하거나, 일반 하자가 3회 발생해 수리한 뒤 또 다시 하자가 생기면 제조사는 교환·환불을 해야 한다'고 명시하며 소비자 보호를 앞세웠다.

그러나 한국형 레몬법은 미국의 레몬법을 흉내만 냈을 뿐 소비자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제조사가 결함이 없다는 것을 밝히는 구조가 아닌 소비자가 결함의 유무를 밝혀야 한국형 레몬법은 성사된다.

이 같은 이유로 지난해 1월 국내에서 레몬법이 시행된 이래 528건의 중재 신청이 들어왔음에도 교환・환불 판정은 '0'건에 불과하다. 기초적인 이해가 결여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적인 이해가 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니 뼈대도 부실하다. 현행법상 레몬법은 계약서에 교환·환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최근에는 국내 대부분의 제조사가 계약서에 이를 포함한다고 하지만 혹여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레몬법을 적용할 수도 없다.

제조사와 소비자 사이의 분쟁에서 중재에 나서야 하는 정부가 뒷짐을 지는 것도 문제다.

일부 제조사는 결함에 대해 원인을 파악한다며 시간을 끌기도 하고, 똑같은 부품의 문제에 대해 동일 결함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반대로 소비자가 주장하는 모든 결함이 진실일 순 없다. 일부 소비자는 점검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차량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결함을 주장하며 기업의 흠집 내기도 일삼는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국토교통부의 하자심의위원회라는 제도적인 중재 방안이 마련돼 있지만 구체적인 매뉴얼도 없고 강제성마저 없다. 이렇다 보니 명쾌한 중재를 기대하긴 힘든 실정이다.

최근 국회에서 레몬법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앞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월 신차를 판매할 경우 레몬법을 강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이 잘못 설계된 레몬법을 다시 뜯어 고치는 신호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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