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에 오른 솔로몬의 첫 시험대가 친자확인 소송이었다.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다투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솔로몬 왕은 신하에게 "칼을 가져와라. 이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반쪽씩 각각 그 어머니에게 주어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한 여인이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친권을 포기한다. 솔로몬 왕은 그 모성애를 근거로 그 여인이 친어머니라고 판결한다. 아이에 대한 사랑을 시험하여 누가 진짜 어머니인지 판단하는 근거로 삼은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재판이다.

그러나 만약 어머니에게 모성애가 없다면 솔로몬의 지혜도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두 여인이 모두 아이의 생명을 포기하여 솔로몬 왕의 명령을 따른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비극적인 일인가? 이제 우리는 DNA 검사를 통해서 친자관계를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자기의 어린 자녀를 학대하거나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DNA가 일치한다고 해도 그를 어머니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가?

이희아 씨는 두 손에 두 개씩 네 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의사와 가족들이 모두 놀라며 걱정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하니까 장애인 복지 제도가 잘 갖추어진 캐나다로 입양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어머니 우갑선 씨의 판단은 달랐다. "두 개의 손가락으로 갈라진 그 작은 손이 힘차게 피어난 튤립처럼 예쁘고 앙증맞아 보였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눈에는 희아의 네 손가락이 '힘차게 피어난 튤립처럼 예쁘고 앙증맞아' 보였다는 것이다.

우갑선 씨는 희아의 손가락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피아노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고 피아노 학원을 찾아간다. 학원 선생님은 희아의 손가락을 보자마자 고개를 내젓는다. "따님 손가락으로는 피아노를 치는 게 무리입니다" 6개월 동안 찾고 또 찾았지만, 네 손가락의 희아를 받아주는 피아노 학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 우갑선 씨가 조미경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희아의 피아노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희아는 손가락의 힘을 기르는 정도의 목표를 넘어서 점차 음악의 세계로 접어들어 '나비야, 나비야'를 연주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한다.

희아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희아가 '쇼팽의 즉흥환상곡' 연주에 도전하도록 한 것이다. 남편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갑선 씨는 딸 희아와 함께 피나는 연습을 거듭한다. 식사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오직 피아노에 매달려 6개월 동안 연습, 또 연습, 참으로 눈물겨운 싸움이었다. 그리고 피아노 교수를 찾아가 평가를 받았다. "이건 음악이 아닙니다" 피아노 교수의 평가는 냉정하였다. 공연히 고생하지 말고 현재의 수준에서 만족하라는 권고였다. 그날 희아와 어머니는 절망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어머니 우갑선 씨는 희아를 다시 피아노 앞으로 불러 앉힌다. "포기하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연습해 보자" 이렇게 다시 시작하여 5년을 더 연습하고 훈련한 끝에 마침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가 탄생한 것이다. 전문가의 부정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딸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오랫동안 참고 견디는 이 사랑의 판단으로 온 세계가 감동하는 기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다. 어머니는 자녀를 사랑으로 판단하여 고귀한 인생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판단할 때에도 어머니만은 자기 자녀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인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부모들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는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전문가의 과학적인 평가보다 어머니의 사랑에 근거한 솔로몬의 지혜가 우리에게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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