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에서 상상력 경진 같은 취지의 대회를 자주 열었다. 집에서 또는 학원에서 코칭을 받은 아이들은 정교한 논리가 가미된 미래 세계를 그려내곤 했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의 아이들이 가장 쉽게 그렸던 것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 물이나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자동차 따위의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은 더이상 상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푸른색의 번호판을 달고 침묵 속에(그나마도 보행자가 눈치챌 수 있도록 인공적인 모터 소리를 가미하여) 달리는 전기차를 우리는 도로에서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제 자동차의 기술은 전기차를 넘어 자율주행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는 '주행 제어 주체', '주행 중 변수 감지', '차량 운행 주체'가 인간인지 시스템인지 여부에 따라 자율주행의 기술을 레벨 0~5로 구분하고 있다. 현재 상용화된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술은 차량 운행만 인간이 담당하는 레벨3 수준을 갖추고 있으나,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들은 곧 레벨4 이상의 기술도 상용화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렇다면 기계가 알아서 주행하는 시대에도 음주운전, 무면허운전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최근 미국에선 T사가 생산하는 전기차의 자율주행 모드로 운행하면서 차 안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다 음주운전(DUI) 혐의로 체포된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자율주행 모드로 운행하면서 운전자는 잠을 자다가 사고가 나서 사망한 경우도 종종 언론에 비춰지곤 한다. 이러한 경우 각종 민·형사상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데 있어 기존의 법체계가 따라가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된다.

도로교통법 제44조는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해서는 아니된다고 정하고, 같은 법 제2조에서 '운전'이라 함은 도로(음주운전의 경우 도로 외의 곳을 포함)에서 차마 또는 노면전차를 그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술에 취해 차에 탑승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운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따라 자율주행차에 접목할 경우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즉, 주행 제어를 기계가 통제하고 주행 중 변수감지와 운행 모두 시스템이 주체적으로 하는 차량에 법정농도 이상의 혈중 알콜 수치를 가진 탑승자가 탑승해 운행이 이뤄질 경우, 이는 위 차량을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인지 아닌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 대법원 역시 "자동차를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했다고 하기 위해서는 엔진 시동을 걸고 발진조작을 해야 한다"고 의미를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대법원 2020. 12. 30 선고 2020도9994 판결). 한편 하급심 판결 중에는 "운전의 개념은 그 규정의 내용에 비추어 목적적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고의의 운전행위만을 의미하고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의 의지나 관여 없이 자동차가 움직인 경우에는 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예가 있어, 이에 의한다면 고도 자율주행 차량의 운행에는 사람의 의지나 관여가 없다고 볼 수 있으므로 도로교통법상의 '운전'으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레벨4 자율주행 수준이 되면 제한 상황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로에서 시스템이 온전히 수행하는 자율주행이 이뤄지며, 최종 단계인 레벨5에서는 탑승자는 오로지 목적지만 입력하고 핸들과 페달을 제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도 도로교통법상의 무면허운전, 음주운전 등이 성립한다거나 최근 화두가 되는 보복운전 등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은 사회통념상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하여 도로교통법의 '운전'의 개념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위 판례들의 문언대로 처벌 가능한 '운전'의 범위에 최소한 인간의 의지나 목적이 개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 표현이 부가돼야 한다고 본다. / 송경재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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