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침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살 사이로 맞이한 여느 평온한 아침과 모든 일상적인 풍경이 그의 마지막이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사형집행 약물의 공급 계약 종료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 마지막의 유일한 이유였다.

2017년 아칸소 주에서 사형이 집행된 레델 리의 사연이다. 그러나 올해 와서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 DNA 증거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라고 다를 것이 없다. 1계급 특진에 눈먼 그시절 경찰들이 겨우 스물둘의 청년을 범인으로 조작해서 그가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을 추억하게 만들어 버린 것을, 심지어 잡지 못한 진범이 자기 입으로 '화성연쇄살인은 내가 했다'고 자랑해야 비로소 진범이 밝혀진 시대적 모순을 보며 우리는 현대 사회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24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폐지국'(국제엠네스티 분류 기준)이다. 200개국이 채 되지 않는 국제 사회에서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폐지국은 108개국, 법적 또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은 144개국이다. 중국과 중동 다수 국가는 사형이 활발하게 집행되고 있다는 점만 알려져 있고, 집행 건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조차 사형은 폐지되지 않았으며,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연방 차원에서 사형 집행을 재개하기도 했다.

형사 사법에서 사형을 형벌 수단으로 삼는 것의 큰 효용은 그것이 법감정의 해소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이다. 각종 매체를 통해 강력 범죄를 대하는 대중들의 표면적 심리에는 '저 흉악범은 죽여야 한다'는 일차적인 본능이 강하게 작용한다. 사형은 사적 복수의 배제를 목표로 하는 국가의 사법작용이 공적 보복을 현실화하게끔 해주는 수단이면서 이러한 집행적 공포를 통해 범죄 억지력을 도모하는 매개이다. 위와 같은 국가의 형벌권 행사가 악용되면 이는 이른바 '사법 살인'이 되는 시대를 우리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사형제가 강력범죄를 실효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의문이 있다. 통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형이 집행되리라 추정되는 중국이 강력범죄 발생률이 더 낮은가 하면 그것도 아닐뿐더러, 사형은 근본적으로 이미 발생한 범죄에 대한 '사후약방문'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사력의 현대화·집중화를 도모해 범죄 예방체계를 고도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사법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범죄 억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한 방향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이른바 '내 세금으로 사형수 밥주기 아깝다'는 인식을 더욱 가라앉힐 수 있다는 판단이 든다.

사형제의 현재가 여기까지였다면, 우리는 세 번째로 사형제의 미래를 엿볼 분기점에 서 있다. 1996년, 2010년 두차례에 걸쳐 사형제를 합헌으로 결정한 헌법재판소가 2019년 제기된 사형제 헌법소원에 있어 세 번째 결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범죄 억지력에 기여한다'는 등을 이유로 사형 제도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이른바 이춘재 사건과 같은 일이 2020년대에도 밝혀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 단순히 권선징악의 문제를 넘어선 시대적 논의가 필요하다. 국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무고한 1명보다 국민의 속이 시원하도록 없애야 할 99명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우리는 사형 제도를 유지할 자격이 있는가. / 송경재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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