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는 우리 한국인의 가슴 속에 참으로 감동적인 드라마로 남아있다. 우리나라는 1950년 6·25전쟁 이후 다른 나라의 원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우리 한국 축구팀은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이겨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 한국의 축구팀이 세계 최강의 축구팀들과 겨루어 16강전, 8강전을 넘어 4강전에까지 올랐으니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당시 한국 젊은이들의 독특하고 열정적인 응원이 새로운 축제 문화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는 축구 경기장 응원석 카드섹션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16강전 이탈리아팀과 한국팀의 경기가 있었다. AGAIN 1966! 1966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이탈리아팀을 이긴 북한 축구팀의 승리를 우리 한국팀이 다시 보여주라는 카드섹션의 참신한 아이디어이다. 북한 동포들도 모두가 우리 축구팀 응원에 참여하지 않았겠는가?

8강전은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팀과 스페인팀의 대결이었다. 나는 응원석 카드섹션의 표어가 경기 전부터 궁금했다. PRIDE OF ASIA!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인 전체가 우리 한국을 응원하도록 끌어들이는 멋진 아이디어가 아닌가? 우리 한국과는 항상 적대적이어서 도저히 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기 어려운 일본인들까지도 아마 우리 한국팀을 응원하지 않았을까? 우리 한국 축구팀은 그날 아슬아슬한 승부차기 끝에 결국 스페인팀을 꺾고 아시아인의 자부심을 세워 줬다.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4강전에서 우리 한국 축구팀은 독일팀과의 대전에서 0:1로 패하며 한국 축구의 멋진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이날 응원석의 카드섹션 '꿈★은 이루어진다'는 문구가 2002년 월드컵 한국 축구팀의 역동적인 드라마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축구 선수들의 화려하고 멋지고 놀라운 경기뿐만 아니라 모든 도시의 거리를 메우며 응원하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모여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생동감이 넘치는 드라마가 전 세계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으니 이때 '꿈을 이룬 기적의 나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꿈이 항상 현실로 이뤄지는가? 소년 이승복의 가족은 1973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승복은 운동을 좋아해서 1976년 체조를 시작했고, 15세에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가게 됐다. 그는 오직 체조 연습에 온 힘과 열정을 기울여 1982년 미국의 전국 체조대회 청소년부 마루와 도마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더욱 치열하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나 1983년 어느 날 이승복은 체조 공중회전 훈련 도중 사고로 목뼈를 다쳐서 목 아래의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휠체어에 앉아 재활치료를 받게 됐으니, 올림픽 금메달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우리의 꿈이 처참하게 깨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간절한 꿈이 깨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승복은 사고 후 오랜 재활훈련을 거쳐서 팔과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 재활과정에서 이승복은 새로운 꿈을 꾼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을 공부하겠다는 열의가 생긴 것이다. 그는 끊임없는 노력 끝에 1993년 다트머스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해 2001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의과대학교에서 인턴을 거쳐 존스홉킨스대학병원에서 재활의학 수석 전문의로 근무하게 된다.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의 꿈이 깨졌지만, 그의 꿈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치료하는 의사 '슈퍼맨 닥터 리'의 새로운 꿈으로 승화돼 실현된 것이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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