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김소연 기자]학생 시절, 빠르게 국어 시험을 풀어야하는 상황에서도 유독 몰입해 읽은 문학 지문들이 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전광용의 <꺼삐딴 리> 등 급박한 시험 상황 속에도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리는 구절들이 있었다. 제목을 확인하며 나중에 전문을 읽어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나면 금방 잊어버렸기 때문에 책장을 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중 하나가 신경숙의 <외딴 방>이다. 외딴 방은 작가의 16세에서 20세까지의 일상을 반영한 자전소설이다. 낮에는 전자업체의 공원으로 밤에는 산업체 특별학급의 학생으로 공부하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문학의 꿈을 키워나간 주인공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소설은 그 제목에서처럼 마치 외딴 방에 갇힌 듯 곱씹으면 숨이 턱턱 막히는 구절들이 있다.

《자연속에서 중간다리도 없이 갑자기 공장 앞으로 걸어가야 했던 나와, 거기에서 보았던 내 또래, 혹은 대여섯 살 많은 처녀들 앞에 놓인 삶의 질곡들과 자연의 숨결이 끊어진 이 도시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거지같은 것들, 이라 해놓고 저들도 놀랐을까. 이편이 침묵을 지키자 그편도 가만히 창문을 닫는다. 이편과 그편 사이엔 라일락나무만 서 있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다가 누군가가 먼저 교실 쪽으로 걸음을 뗀다. 조용조용한 발걸음들이 라일락나무를 스쳐간다. 온종일 생산현장에서 물질을 만들어내느라 서성대던 종아리들이 불 켜져 있는 그편 창문 밑을 소리 죽이며 걸어간다》

일과 학업을 밤낮으로 병행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80년대 열악한 노동 상황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노동가치가 추락한 현실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1970년대 전태일 분신투쟁으로 한국의 노동현실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며 이후 노동 운동은 조건이 열악했던 '여성이 다수인 경공업 사업장'에서 주로 발생했다. 이 시기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기독교 단체가 민주노조 건설에 기여했다.

1980년 광주항쟁을 무력 진압하며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은 민주노조를 와해시켰지만 시민들이 흘린 피는 운동권 전체에 노동자계급이 변혁운동의 주도세력이 돼야 한다는 것을 자각시켰다.

현재는 오히려 황제·귀족노조라 불리며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노동조합이 문제라는 의견이 있지만 노동운동의 피흘린 역사를 악용하는 단체에 대해선 언급할 필요가 없다. 좌우를 따지는 것도 아니다.

21세기인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한국 노동사회 문제를 대표하는 '비정규직 문제'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갑자기 출현한 산물이 아니다. 1990년대 신경영전략과 이른바 정리해고제·변형(탄력)근로제·근로자파견제 등 3제 입법시도 등을 통해 10년 이상 준비되고 양성됐다. 

또한 매년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지만 이는 노사갈등만 증폭시키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매월 최대를 경신하고 있고 근로소득만으론 이제 집 한채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 노동의 가치가 곤두박질 친 것이다. 

지난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만 18~29세 청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2.9%는 향후 청년 일자리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69.5%는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가능성도 작다고 봤다. 70.4%는 열심히 일을 해서 부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응답자의 65.2%는 '평생직장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소설이 출간된지 2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 청년들은 '외딴방'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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