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규 한국 L&S 대표이사. 
선원규 한국 L&S 대표이사. 

[월요신문=이인영 기자]"좁은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살아 남으려면 글로벌화가 가능한 콘텐츠 사업모델을 연구하고 이와 연관된 소재·부품 사업을 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고 기회도 훨씬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패션·유통업계의 중견 기업에서 30여년 동안 전략 기획 업무를 수행해 온 선원규 한국 L&S 대표는 우리나라 기업의 미래와 비전에 대해 이같이 제시했다.

최근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편리한 플랫폼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비지니스 생태계에 큰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플랫폼과 콘텐츠는 언제나 핏이 맞아야 한다.' 플랫폼의 변화는 이에 맞는 콘텐츠 사업의 변화를 동시에 요구한다는 게 그의 관점이다.

선원규 대표가 이달 출간한 '애프터 코로나 비즈니스 4.0'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변화하는 사업모델에 대한 그의 인사이트를 보다 자세히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플랫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는 콘텐츠 그리고 플랫폼과 콘텐츠의 상관관계에 대해 저술했다.

선 대표는 '생각이 변화를 만든다'고 강조한다. 생각이 멈추면 변화도 생명도 멈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많은 토론과 고민들이 생겨나길 기대하고 있다. 답을 주는 것이 아닌,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서로 토론하고 고민하면서 답을 찾아가는데 길라잡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달에 신작 '애프터 코로나 비즈니스 4.0'을 출간하셨는데, 이 책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 혹은 이유가 있으셨나요.

저는 이랜드, 코오롱, 한섬, 세정 등 패션 유통업계의 중견 기업들에서 30여년 동안 전략 기획 업무를 해왔습니다. 전략 기획실은 기업의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고 구축하는 부서로 저는 늘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다양한 사업모델의 장단점들을 연구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코로나19로 4차 산업혁명이 앞당겨지고 있는 가운데 미래 시대에 사업모델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그 사이 각 기업은 자신이 가진 자원과 위치에서 어떤 사업모델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은 없다고 생각돼 이번에 책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플랫폼으로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제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고 오히려 콘텐츠 사업모델에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글로벌화 가능한 콘텐츠를 포함해 투자자들과 정부의 정책도 역량있는 콘텐츠 사업모델에 더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는 점도 논하고 싶습니다.

Q. 플랫폼과 콘텐츠의 상관관계에 대해 각 개념을 간략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플랫폼 사업은 쉽게 말하면 마당이나 공간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이 그 마당과 공간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사업을 말하고, 콘텐츠 사업은 그 마당과 공간을 채울 내용물을 제공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시장이나 백화점 같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은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팝니다. 이 경우 기반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사업과 그 기반 위에서 거래를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사업은 본질적으로 매우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사업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사업은 씨줄과 날줄처럼 플랫폼과 콘텐츠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플랫폼과 콘텐츠가 상호 의존적이어서 플랫폼 안에는 반드시 콘텐츠가 있고 콘텐츠는 반드시 플랫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업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가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서로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Q. '디지털 전환'이 필수가 된 시대에서 기업은 어떤 '콘텐츠'에 주목해야 할까요.

앞으로 기업은 모든 영역에서 개인 혹은 소기업, 소공인과 경쟁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봅니다. 따라서 미래의 콘텐츠 기업은 ▲게임·영화·드라마·스포츠 등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투자 규모, 상품과 서비스의 질적인 수준에서 소공인들과 경쟁에서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콘텐츠 시장 ▲상표나 특허 등 IP(Intellectual Property) 기반으로 브랜드 구축이 가능해서 장기적인 성장이 가능한 시장 ▲제약·식음료·화장품·교육·보건·의료·금융 등 신뢰가 생명인 콘텐츠 시장 ▲자동차·조선·항공·기계·중장비 등 국가 기간 산업 관련 콘텐츠 시장 ▲기술력이 요구되는 철강·반도체·밧데리·신소재·에너지·화학 등 각종 소재 및 부품·장비 시장 등에 주목해야 합니다.

Q. 기업이 '오버슈팅' 예측 과정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까요. 중요도 순으로 세 가지 정도 언급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오버슈팅은 모든 시장 변화의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소위 새로 생성되고 있는 시장에는 반드시 오버슈팅 현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래서 관건은 바로 '투자의 타이밍'입니다.

사업 투자에서 실패를 줄이려면 시장의 라이프 사이클상 도입-성장-성숙-쇠퇴기 중 언제인지를 가늠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입기나 성장기 초반이라면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 반면 성숙기에 투자하면 실패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번째로 역량 관점에서 만약 우리기업의 역량이 경쟁사 중 3위안에 들 수 있다면 투자를 시도해 봐도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시장이 축소돼도 3위까지는 생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시장이 만약 업계 판도를 바꿀 큰 시장이라면 앞서 말한 두 가지 조건에 다소 못 미치더라도 투자해 보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큰 시장은 거품이 꺼지더라도 다른 생존할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원규 대표.
선원규 대표.

Q. 최근 정부와 여당의 플랫폼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향후 플랫폼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근 각국 정부의 플랫폼 규제 움직임은 제가 책에서 언급한 플랫폼의 '공공성'과 '독점성' 때문입니다.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공공성이 생명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유사한 공통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플랫폼이 공공의 이익에 충실한다면 정부와 공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익에 눈이 멀어 공공성을 해치는 운영을 한다면 정부와 충돌할 것이고 심각해지면 공사화를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플랫폼의 특징과 정부의 독점금지법이 충돌한다는 점도 눈여겨볼만합니다. 플랫폼은 독점의 효율이 경쟁의 효율보다 좋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독점화돼야 좋은 것이 많다는 의미로 정부의 독점금지법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플랫폼 기업은 '공정 경쟁 환경을 만들기 위한' 독점 금지법의 취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플랫폼 기업은 공공 기업처럼 공정경쟁 환경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돼야 정부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탐욕을 부리거나 독점자의 지위를 남용하거나 하는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면 정부와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것입니다. 이들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은 정부보다 더 공공의 이익과 공정한 경쟁의 원칙에 충실하는 것뿐입니다.

Q. 패션·유통업계 경력 30년의 경영전략 전문가로서 우리나라 패션산업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내다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 국내 기업이 갖춰야 할 자세나 덕목은 무엇이 있을까요.

패션은 대표적인 콘텐츠 비즈니스입니다. 최근 한류 바람과 함께 K-팝, K-드라마, K-푸드, K-컬처 등이 사랑을 받는데 비해 K-패션은 글로벌 시장에서 다소 부진합니다.

먼저 우리나라 패션 사업의 유통구조 특성이 서구와 다르고, 그 결과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이 너무 없어 글로벌 패션 시장의 운영 방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또 내수시장 경쟁이 심해서 글로벌 시장에 대한 도전이 적다는 점도 요인 중 하나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가 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졌고, 글로벌 온라인 패션 플랫폼들의 발달과 외국어에 능통하고 외국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많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차별화되고 혁신적인 콘텐츠 개발에 주력해야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글로벌한 것'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면서 빠르게 글로벌 트렌드를 수용하고 재창조해 융합된 새로운 스타일들을 창조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패션 유통 플랫폼의 운영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고 거기에 핏을 맞추는 노력 ▲글로벌 인플루엔서를 활용한 강력한 마케팅 ▲글로벌 패션 브랜드 가능한 영역에 대한 집중 투자 등을 통해 대표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탄생과 성장이 한류의 완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선원규 한국 L&S 대표는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NYU 경영대학원에서 EMBA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 졸업 당시 매출 100억원 정도의 신생 기업 이랜드에 입사해 15년가량 1조 그룹이 될 때까지 그룹의 사업 및 경영전략 책임자로 수많은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현재는 CEO이자 CEO의 전략 고문으로서 스타트업과 전통기업들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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