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임금과 부모와 스승에게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다. 그래서 학생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정도로 교육자의 권위를 존중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회도 그런 무조건적인 권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됐다. 교사는 이제 학생들에게 '사랑의 매'라는 교육적인 체벌조차 가할 수 없다. 어떤 체벌이든지 '아동학대'라는 범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교사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교사의 권위를 무시하는 상황에서 어떤 교육이 이뤄지겠는가?

그러므로 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 우리 한국이 당면한 가장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교사의 권위를 누가, 어떻게 세울 수 있는가? 교사의 권위는 근본적으로 교사들 스스로 세워야 한다. 우리는 어떤 강압적인 강요에 의해서 진정한 권위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기 분야의 탁월한 전문지식과 훌륭한 인격뿐만 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통해 교육자의 권위를 세우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교사가 학생의 바람직한 성장을 돕는 일이다. 따라서 교육은 학생의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교사의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 학생에 대한 교사의 믿음이 있어야 학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사정이나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일수록 교사의 믿음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

1960년대 초중등학교를 다닌 소년 은강은 그 시절 존경하는 선생님들로부터 들었던 말씀 한 두 마디를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한다. 은강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교실 청소를 마친 후 청소 당번 친구들과 함께 청소 검사를 받으며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은강이는 청소 시간에 선생님이 보든지 안 보든지 항상 똑같이 행동하잖아? 그래야 되는 거야." 감독자가 있든지 없든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을 선생님은 어린 은강이 평생 잊지 않도록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은 스쳐 지나가듯 던진 말씀이지만, 신뢰를 받은 학생의 가슴 속에 평생 믿음의 언어로 남아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교육이 학생의 성장을 위한 것이므로 교사의 관심은 항상 학생의 미래를 향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격려하고 도와줘야 한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에게 교사의 교육적인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은강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은강에게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때부터 농사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일찌감치 말씀해 두셨다. 당시 가난한 농촌 가정 학생이 도시의 중학교에 진학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웠다. 그런데 선생님은 은강이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걸 잘 아실 텐데, 가끔 은강에게 이런 농담을 하시곤 하셨다. "은강아, 너 나중에 대통령이 돼서 청와대에 가도 선생님을 모르는 척하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교사는 농담을 해도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마음을 담아야한다는 메시지로 들려오지 않는가?

은강이 고등학교에 진학은 했으나 가정 사정이 더욱 어려워졌다.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자리에 눕게 되신 것이다. 그런데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오직 대학입시 준비 공부만 시키는 현실인데, 학업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자퇴 여부를 혼자 고민하다가, 전근을 가신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선생님은 바로 답장을 주셨다. "은강이는 나를 가장 기쁘게(슬프게) 할 것 같구나. 비판하라! 비판하라!" 은강은 선생님의 뜨거운 사랑이 담긴 편지를 대학생이 되어서까지도 오랫동안 안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학생들이 존경하는 교사의 권위는 결국 제자를 향한 선생님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 위에 세워지는 게 아니겠는가?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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