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조규상 기자]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1~2가, 을지로 5~7가, 신당동 일대에 위치한 약 586,000㎡(약 17만 평) 규모의 국내 최대 패션 관광특구 동대문. 한때 대한민국 패션의 메카였던 동대문시장이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도 있겠지만 그 전부터 동대문의 몰락은 예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내일의 희망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동대문시장은 116년의 역사와 함께 상인, 봉제사 등의 피와 땀이 모여 형성된 곳이다. 급조된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동대문시장의 몰락이 안타까울 뿐이다.

동대문시장의 역사를 보자. 1905년 김종한 외 3인이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동대문시장은 국내 최초의 근대 시장으로 개장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일부 건물이 파괴됐지만, 1961년 평화시장이 들어서고 피난민들이 생필품과 군수품을 거래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이후 평화시장 내에 봉제공장들이 빽빽이 들어서게 되고, 이는 섬유산업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이면에는 봉제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한국의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전태일 또한 동대문 평화시장 내 봉제노동자였다.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가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 발전과 근로 환경 개선의 시발점이 바로 동대문이라 할 수 있다.

1970년에는 원단 및 부자재 시장인 '동대문종합시장'이 생겨났고,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흥인시장', '제일평화시장', '덕운시장' 등이 오픈하며 동대문시장은 섬유·의류 종합 도매시장으로 거듭났다.

1997년 IMF 사태로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릴 때, 동대문시장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동대문운동장(現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너편에 밀리오레(1998), 두타(1999), 헬로apM(2002) 등 소매 쇼핑몰이 들어서며 젊음과 패션 메카로 거듭난 것.

그러다 2010년대 접어들면서 대기업 중심의 SPA브랜드가 부상하자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SPA브랜드가 저렴한 가격에 품질 또한 우수한 의류를 판매하자 내수 경쟁력을 잃게 됐다.

이때 동대문 상인들이 손길을 뻗은 것은 중국 상인들과 관광객들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결국 양날의 검이 돼 돌아왔다.

우선 중국 상인들은 꾸준한 고객이 되지 못했다. 상당수의 중국 상인들은 디자인을 베끼기 위해 동대문시장을 찾았다. 중국인들의 기술력은 날로 성장했고, 어느 순간 발길을 끊기 일쑤였다. 지난해 코로나19까지 유행하면서 중국과의 수출입도 사실상 막혔고, 중국인 관광객마저 사라졌다. 중국 인터넷 인기 크리에이터 '왕흥'들도 국내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수 시장은 더욱 싸늘해졌다. 의류에 대한 가치 소비는 점점 프리미엄화됐고, 청소년들까지 '똘똘한 한 벌'을 외치며 명품을 찾고 있다.

동대문시장은 아직도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내수와 수출시장의 한 축이자 서민경제와 직결돼 있다. 동대문시장의 매출은 연간 약 15조원, 일 평균 500억원에 달한다. 동대문시장의 몰락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되는 이유다.

SPA브랜드와 중국산 저가 의류에 맞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높아진 인건비와 물가를 고려하면 더 이상 박리다매(薄利多賣) 상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독특한 디자인과 특화된 가게로 브랜드와 맞설 수 있는 제품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복제 아이템으로 가격 경쟁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다.

동대문시장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선 서울시와 정부의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 우선 중구 경찰청 기동대 부지의 활용에 관심이 모인다. 지난 2018년 정부와 서울시는 중구 경찰청 기동대 부지에 대해 사업비를 투입해 패션혁신허브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동대가 서초구 우면산 쪽으로 이전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이 부지는 현재 답보상태이다. 당초 계획대로 패션혁신허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빠른 사업 진행이 필요하다.

DDP를 중심으로 주변 상권을 연계하는 사업도 활성화해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관광객들이 DDP를 찾았지만 주변 상권으로 유입되지는 않았다. 앞서 서울시는 내년도 예산에 DDP 중심의 디자인산업 활성화를 위해 211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 예산이 동대문시장 활성화를 위한 밑거름이 돼야 한다.

우수한 젊은 디자이너에 대한 지원을 늘려 창업 문턱을 낮춰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영세한 소규모 업체지만 능력을 갖춘 업체끼리 힘을 합쳐 공동 브랜드를 육성하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도 서울시와 정부의 역할이다.

아울러 플랫폼과 풀필먼트(상품 사입, 물류, CS 등을 모두 대행해주는 서비스) 등 패션시장의 디지털화에도 동대문시장이 발맞춰 나가야 한다. 네이버가 국내 동대문 스마트 물류의 글로벌 연결을 성사시키겠다며 '프로젝트 꽃 2.0'을 발표하는 등 힘을 보태고 있지만, 상인들의 수준이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인 디지털화에 상인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동대문시장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진화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동대문시장도 웃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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