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인가, 나그네인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25년 1월 동아일보에 기고한 '국내 동포에게 드림'이라는 논설의 제목이다. 오늘 대한민국 사회에 주인이 되는 이가 얼마나 되는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명목상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인데, 주인이 얼마나 되는가 묻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도산 선생은 이 땅에 실제로 주인다운 주인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탄식한다.

1919년 3.1운동 후 출범한 상해의 임시정부는 우리나라의 국호를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으로 규정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이제 전제 군주국에서 벗어나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언더우드가 세운 구세학당에 다니던 시절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선생을 만나면서 독립협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때부터 도산 선생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됐다. 도산 선생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살았으니, 그의 전 생애가 주권 상실의 시대였다. 그렇지만 그는 국민 주권의 새 시대를 내다보며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자세로서 주인정신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국민은 마땅히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안창호 선생은 1907년 신민회를 결성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하면서 무궁화와 애국가를 국가의 상징으로 보급하고자 힘썼다. 또한 1908년 민족의 장래를 위해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학교의 교훈을 '주인정신'으로 삼아서 책임감이 강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다.

당시 대한제국의 국가로 부르기 시작한 '무궁화 노래'는 당연히 황실 중심의 가사로 작사됐다. 그런데 도산 선생은 그 가사를 바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현재의 애국가 가사로 고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도산 선생은 이 시기에 이미 군주국가가 아니라 민주국가의 시민을 육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집이든지 주인이 없으면 그 집이 무너지거나 다른 사람이 그 집을 차지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든지 주인이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고, 그 민족의 권리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도산 선생은 우리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먼저 우리나라에 주인이 얼마나 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조국의 동포들에게 우리나라의 참 주인인가, 아닌가,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인과 나그네를 무엇으로 구별하는가? 국가에 대해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나그네이다. 누구나 민족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거나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민족을 위한 헌신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가는 나그네도 남의 집의 불행한 일을 보고 눈물을 흘리거나 그 집의 위급한 상황을 돕기 위해 희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그네에게는 그 집의 일에 대한 영원한 책임감이 없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 민족과 국가에 대하여 영원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다.

주인은 집안일이 잘되거나 못되거나 자기의 집을 떠나지 않는다. 주인은 가족이 잘났거나 못났거나 자기의 가정을 지킨다. 주인은 자신의 능력이 크거나 작거나 자기 집의 모든 일에 대하여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기에 수필가 김소운 선생은 일제강점기 주권을 상실한 조국에 대한 그의 뜨거운 애정을 "나의 어머니가 비록 문둥병 환자라 할지라도 나는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는 비유로 표현했다.

그대는 민주시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영원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가? 그대는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도산 선생의 질문이 오늘 우리에게도 다시 생생하게 들려온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