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남정운 기자] 그야말로 21세기판 가렴주구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TV홈쇼핑업계에는 때아닌 암행어사 출두가 필요해 보인다.

TV홈쇼핑업계가 납품업자들에게 각종 불공정행위를 일삼다 공정거래위원회에게 적발됐다. 7개 사가 총 7가지 위법행위로 과징금 41억4600만원과 시정명령‧경고 등의 철퇴를 맞은 것.

특히 이들은 평소 납품업자와의 상생을 공언해왔음에도 지난 5년간 이른바 '갑질'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TV홈쇼핑사는 지난 2015년 1월부터 2020년 6월까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판촉비용 전가 ▲납품업자 종업원 등 부당사용 ▲계약서면 즉시교부 위반 ▲양품화 관련 불이익제공 ▲상품판매대금 지연지급 ▲부당 반품 ▲최저가 납품조건 설정 등의 대규모유통업법을 수차례 위반했다"고 밝혔다.

앞서 TV홈쇼핑업계는 납품업자들과의 상생을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일명 '빅3'로 불리는 롯데홈쇼핑‧현대홈쇼핑‧CJ온스타일의 올해 행보만 살펴봐도 업계가 '중소기업들의 판로 개척을 위해 노력하는 상생 대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쏟은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현대홈쇼핑은 신규 입점한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히든챔피언 스케일업'을 전개, 총 15억5000만원을 지원한다고 지난 1일 전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8월 "중소기업 판로 개척을 위한 수수료 우대 방송 편성을 두 배 확대하고, 티커머스 등 송출 채널을 확대하는 등 상생 방송을 개편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CJ온스타일은 지난 3월 "중소기업을 위해 만든 판매 수수료 무료 방송 프로그램 '1사 1명품'이 총 주문금액 200억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번 처분이 알려지면서 이들의 상생 행보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의 위법행위는 일회성이 아니라 5년간 꾸준히 반복된 '관행'이기 때문이다.

TV홈쇼핑업계는 시장에서 그 누구도 웃지 못하는 비극을 연출했다. 우선 본인들은 이번 사태로 수십억대의 과징금을 물고 그동안 공들여온 '상생‧착한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중소기업들은 이들의 병 주고 약 주는 행보에 최소 5년간 고초를 겪었다.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진 건 아니지만 업계의 중소기업 지원사업 취지에 공감하고 참여한 소비자들이 느끼는 배신감도 빼놓을 수 없다.

과점구조인 TV홈쇼핑 업계에서 철저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에게 더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판로 하나하나가 소중한 중소기업에게 과점 업계 블랙리스트에 오를지도 모르는 상황 전면에 나서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다.

결국 이해관계 바깥에 서 있는 존재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업계의 자정 노력을 확신할 수 없는 지금, 소비자와 정부 관계부처의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만이 갑질 고리를 끊을 유일한 열쇠다.

특히 최근 비대면 쇼핑 트렌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MZ세대는 플랫폼의 도덕성 등 상품 외적인 이슈에 민감하다. 이들을 필두로 소비자들이 먼저 갑질하는 플랫폼은 이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업계의 윤리경영을 유도해야 한다.

정부는 관련 제도와 감시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익명 갑질 제보 채널을 운영하고 관련된 민사 분쟁에서 징벌적 손해배상금 도입을 고려하는 등 갑질 억제력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대처 방안을 세워야 한다.

이제 가렴주구로 몰래 한몫 챙길 수 있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업계는 이런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게 자신들에게 좋은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다음에 같은 일이 또 반복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소비자와 정부의 '암행어사'가 출두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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