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은 인간 생활에 가장 소중하고 필수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화장실을 뒷간 또는 변소라고 부르며, 불결하고 더러운 혐오시설로만 여겨왔다. 사람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악취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말에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1960년대 종이가 귀하던 시절 대부분의 농촌 가정 뒷간에서는 대변을 본 후 휴지가 아니라 볏짚을 사용하였다. 그 시절 뒷간은 우리에게 악취가 나는 어둡고 불결한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안전이 우려되는 위험한 곳이었다. 뒷간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그 공포심 때문에 밤에는 혼자서 용변을 보러 가기가 두려운 장소였다.

1970년대 우리가 시골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맨 먼저 공중변소에 들러야 했다. 무료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중변소가 있어서 고마웠지만, 악취가 너무 심했다. 우리는 최대한 숨 쉬는 횟수를 줄이면서 용무를 마쳐야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면서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는 크게 변화하였다. 이제 뒷간이나 변소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화장실로 변모하였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가장 먼저 이성낙 선생의 칼럼이 눈에 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제기된 공중화장실의 해결책으로 서울 시내 대형빌딩 화장실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방안을 한 언론사에 제안했는데 그 방안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심재덕 수원시장이 공중화장실 개선사업을 시작하였고, 그 후 전국적으로 공중화장실 미화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심재덕 시장은 1999년 한국화장실협회를 설립하였으며, 해마다 전국 '아름다운 화장실 경연대회'를 열어 국내 화장실의 질적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다. 나아가 ​심 시장은 세계화장실협회를 창립하고 인류의 보건위생을 위한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화장실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수원 자기 소유의 집터에 화장실 박물관을 건립했으니, 쾌적하고 아름다운 화장실을 향한 그의 열정과 사명감을 짐작하게 된다.

유럽 국가들을 방문해본 사람이면 그곳에서 공중화장실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유럽에서 공중화장실이 이처럼 희귀한 시설임을 알고 나면,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이 얼마나 많은지 감탄하게 된다. 이른바 선진국에 가서 겪는 어려움은 급하게 화장실에 가야 할 때 이용료 동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의 화장실을 유료로 사용한 적이 없는 한국인에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99년 창립된 화장실문화시민연대는 화장실을 아름답게 가꾸는 시민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화장실은 이제 생활 속의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계속적으로 아름다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정부의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언론매체, 시민단체 등이 힘을 모아 헌신한 결과이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아름다운 공중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1970년대 서울역 앞 공중변소를 회상하며 화장실 문화의 아름다운 변화를 이끌어 온 분들에게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최근 화장실에 자주 갈 수 없어서 방광염과 같은 직업병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다는 뉴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대중 교통기관의 운전이나 학교에서 급식을 담당하는 분들이 화장실을 이용할 시간이 부족해서 이런 질병으로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화장실 사용 문제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이다. 이런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화장실 사용에 문제가 없도록 근무환경이 속히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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