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승동엽 기자]81세 노구의 몸을 이끌고 김종인이 또다시 정치판 한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직함을 달고 대선 총지휘에 나선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간 여야를 넘나들며 '킹메이커',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가 소위 '위원장'으로 지난 10년간 활동했던 모습들을 살펴보면 그의 성격을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강한 신념과 결단력도 보이고 반대로 고집과 통제 불능의 모습까지 확인 할 수 있다. 이는 이기는 정치를 하기 위한 김 위원장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 같은 김 위원장의 속성을 보면 어딘가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야신'으로 불리는 야구계 원로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이다. 나이대도 비슷한 두 원로들은 강한 신념과 고집에서 매우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7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한동안 야인으로 세월을 보낸 김 위원장은 지난 2011년 중도확장을 노린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요청으로 여의도에 복귀했다. 김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대표 공략인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다.

그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란 직함으로 박근혜 후보 캠프에 있으면서 자신의 공략인 경제민주화로 인해 당내 주요 세력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좌클릭·포퓰리즘이라는 비판 앞에서 김 위원장은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 역시 경제민주화 공략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지만 김 위원장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새누리당과 결별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때도 김 위원장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당만 바뀌었지 그의 고집은 여전했다. 당 내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영입을 관철시킨 것이다. 김현종 전 본부장은 삼성전자 글로벌 법무 담당 사장으로 일해 온 터라 당내에선 반농민적이고 당의 정책에 명백히 반하는 인사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기어코 김현종 전 본부장을 영입했다.

셀프 공천 논란에 있어서도 김 위원장은 자신의 신념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민주당 중앙위원회가 '노욕'이라며 셀프공천에 반발하자 김 위원장은 사퇴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비대위 해체 직전까지 갔던 위기는 당의 양보로 수습됐다. 김 위원장은 처음 원했던 대로 비례대표 2번을 받고 사퇴 의사를 거둬들였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행보는 좋게 보면 신념, 나쁘게 보면 고집불통에 통제 불능으로 비쳐진다. 2012년 총선·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조차 그에게 제동을 걸지 못했다. 브레이크 없는 김 위원장의 독주에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당의 영혼까지 팔려나갔다"는 탄식도 나온바 있다.

(왼쪽부터) 김종인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거대책위원장, 김성근 전 한화 감독. 사진=뉴시스
(왼쪽부터) 김종인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거대책위원장, 김성근 전 한화 감독. 사진=뉴시스

김 위원장의 이러한 성격은 '야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전 한화 감독과 닮은점이 많다. 김 감독은 구단들에게 '독배'와도 같은 존재다.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 약팀을 강팀으로 탈바꿈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 대가가 만만치 않다.

팀 운영에 대해 사실상 전권을 요구하는 김 감독의 스타일 탓에 구단 프런트는 사실상 팀에 대한 통제력을 잃곤 했다. 지난 2007∼2010년 'SK 왕조' 시절이 그랬다. 그는 SK 팬들에겐 '영웅'이었지만 프런트에겐 '고통'이었다. 그가 구단과의 마찰 끝에 SK를 떠난 것도 김 위원장의 과거 모습들과 매우 비슷한 점이 많다.

예상대로 20대 대선 선대위 합류 과정에서도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성격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당초 무난히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할 것으로 보였으나, 김병준·김한길 등이 영입되면서 선대위 합류를 머뭇거렸다. 이유는 '전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김종인·김병준·김한길 '3김' 체제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선대위에서 1인 체제를 사실상 약속받고 합류를 했다. 전권을 요구한 김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낫다는 말이다. 국민의힘이 김종인을 또다시 영입한 이유다. 마치 한화가 김성근을 영입한 것처럼 말이다.

한때 프로야구단들 사이에서는 김성근 감독을 쓰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다. 2011년 김 감독이 SK를 떠난 뒤 3년 간 지켜졌던 이 협정은 2014년 한화가 김 감독을 전격 영입하면서 깨졌다. 통제 불능이어도 김 감독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당시 한화는 김 감독 영입 이후 일명 '마약야구'를 선보이며 돌풍을 일으켰었다. 불펜투수들을 혹사시킨다는 논란도, 큰 점수 차로 앞설 때 도루를 하는 등 야구의 '불문율'을 어긴다는 비판도 김 감독이 이끈 '마약야구' 열풍에 묻혔다.

그러나 시즌 종반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뒤 사정이 달라졌다. 일부 한화 팬들조차 김 감독에게서 등을 돌렸다. 팬들은 선수들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는 혹독한 훈련, '벌떼야구' 등 김 감독의 고집불통을 두고 비판을 가했다.

김 위원장은 김 감독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나이를 고려했을 때 정치권에서 이번이 마지막 여정일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 정치적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쳐 그간의 행보를 강한 신념의 소유자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만약 김 감독이 한화에서 실패한 것처럼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김 위원장의 신념은 노욕의 고집으로 평가 절하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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