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안정대책을 마련하면서 그 칼날이 정유사들을 겨냥하고 있는 모양새다. 공정위는 지난 1월 13일부터 SK에너지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의 불공정 거래 관행에 대한 대규모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물가 안정 종합대책을 주제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78차 국민경제대책 회의를 주재하면서 "어떤 것보다 유가가 다른 물가에 가진 파급력이 크다"며 "여러 물가에 영향을 주는 기름값의 경우 유가와 환율 간 변동관계를 면밀히 살펴 적정한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한편 정부는 서민물가 안정을 위해 상반기에 전기와 가스 등 중앙 공공요금은 동결하고 지방 공공요금도 물가 상승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1월 12일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는 등 지난해 10월 9일 이후 석달 째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고 있는 휘발유 값이 과연 이번 공정위 조사를 계기로 내려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정유사들은 기름값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세금을 지적하며 가격 인하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름값 고공행진

 

서민경제는 계속해서 어려워지고 있는데, 기름값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어 요즘에는 개인 셀프 주유소를 찾는 운전자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웬만하면 차도 조금씩 끌고 다닌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매일 먼거리를 오고 가는 화물차 업주들도 하루 7-8시간 장거리 운전을 하고도 기름값을 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지난 13일에 두바이유 국제 현물가격은 전일보다 배럴당 2달러 이상 오른 94.23달러를 기록하며, 2년 3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최근 1년 간 최고치였던 1월 6일(92.00달러)보다도 2.23달러 높은 금액이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석유가격 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그동안 전국 광역단위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1700원대를 유지했던 전북지역 주유소의 보통 휘발유 일일 평균가격이 지난 12일 ℓ당 1800원을 넘어섰다.

 

이로써 석유공사가 지역별 휘발유 가격을 집계하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보통 휘발유 일일 평균가격이 1800원 이상이 됐다. 이는 2008년 8월 8일 이후 2년 5개월만의 일이다.

 
서울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서울 도심 지역 대부분의 주유소 기름값은 2천원을 넘어섰다. 시민들은 "서울에서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그야 말로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셈"이라며 기름값 고공행진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석유제품 상승세,
정유사들 담합 때문?

 

기름값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기름값은 다른 품목의 물가에 주는 영향이 큰데, 그 상승세가 최근 너무 가파르다는 것도 큰 문제로 판단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기름값 상승과 관련해 "과연 적정한 수준인지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국내 정유사들에 직격탄을 날렸다.

 

국내 정유사의 유가 책정이 적절한지를 살펴 인하 가능성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로 해석된다. 때문에 정부 주도의 유가조정을 기대하는 시선이 많아지고 있다.

 
또, 이 대통령은 "주유소 등의 행태가 묘하다"며 정유사들의 불공정 거래 가능성도 시사하는 듯한 말을 남겼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인데 휘발유 가격이 1800원대라면 메커니즘 상 이해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말도 남겼는데, 이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 선일 때 주유소의 리터당 휘발유 가격이 2000원 선이었다면, 지금 80달러 수준에서는 더 내려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뜻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곧바로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TF'를 구성하고 전면적 조사에 나섰다. 이번 TF는 신임 한철수 사무처장이 이끌며, 시장감시국, 카르텔조사국, 소비자정책국 등 공정위 3개국 직원 1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정유사와 주유소 간 수직계열화한 유통구조가 기름값의 거품을 형성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이 원유 가격에 비춰 부당하게 비싼 값으로 기름을 팔고 있는지 살피는 한편, 6개 업체가 지난 1일부터 LPG 가격을 Kg당 160원으로 올린 것을 두고 담합에 해당하는 지에 대해서도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공정위는 현재 조사 원칙상 조사가 진행 중인 품목이나 업체에 대한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며 이번 현장 조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정유업계, 민감한 반응

 

정유사들은 이 대통령의 발언과 기름값 가격 인하를 위한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눈치다.

 
정유사 사정을 잘 아는 정부가 '가격 체계'를 언급하며 기름값을 내리라는 듯한 신호를 주는 것이 너무 심하다는 반응이다. 기름값에 포함된 세금이 50%에 달하는데, 가격 인하를 하려면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석유공사 등을 통해 유류세 50%, 정유사의 세전 공급가격 44%, 주유소 이윤 6% 정도의 비율로 마진률을 꽉 조여놨다"며 "정부가 유류세를 내리지 않는 한 기름값을 내리려면 정유사나 주유소가 자신의 이윤을 조금이라도 포기해야 하는 구조"라는 정유사 관계자의 말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지적을 하고 나섰기 때문에 가격 인하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유사들은 유가 상승요인이 있을 때마다 이를 그대로 가격에 반영하다가 인하요인이 있을 때는 내렸다는 시늉만 할 뿐 사실상 매우 조금만 내려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곤 했다. 이 대통령도 이 점을 직접 언급했던 만큼, 이번에는 정말로 가격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유사들은 기름값 상승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1월 둘째 주 세전 공급가격을 전 주보다 휘발유는 ℓ당 15.9원, 경유는 22.2원 내리기도 했다.

 
청와대 측은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특정한 지침을 정하고 기름값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으로 석유 가격 체계를 잘 점검해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이 특히 기름값에 대해 방점을 둔 것만은 분명하다.

 
서민경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기름값이 이번 공정위 조사를 통해 그 속에 숨은 비리가 캐지고 적정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을 지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번 물가안정대책과 함께 기름값이 일반 주유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셀프 주유소를 늘리고, 도심 대형마트에도 주유소 영업을 허가할 방침이라고 밝혀,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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