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강타한 대지진의 여파가 열도를 삼킨 가운데, 자칫 파장이 여의도로 대표돼온 정치권으로까지 몰아닥칠 기세다. 일본은 지난 11일 진도 7.9에 이르는 강진으로 인해, 10만명에 가까운 실종자를 내고 1백만에 육박하는 이재민을 발생 시켰다.

 

그러나 이일은 현해탄을 넘어, 국내에서도 일본의 강진 피해에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 정부와 정치권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피해와 관련, 지원 대책을 강구하는 등 부산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는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극심한 피해를 당한 일본을 도와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원 정국'으로 인해 그간 정가의 이슈들이 대부분 눈에 덮히듯 없던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반응도, 여야로 나뉘어 각각 다르게 드러나는데 한동안 국정원 잠입 소동과 상하이 파동 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여권은 내심 안도의 숨을 몰아쉴 수 있게 됐다.

 

이에 반해 각종 실정을 쟁점으로 4월 선거까지 넘봐온 야권의 속내는 새카맣게 타들어 가면서 종전 심판론 불씨 살리기에 안간힘을 쏟는 분위기다. 이웃나라 일본의 사상 초유 대참사에 정치권의 명암을 조명해 본다.

 


 

“일본을 급습한 대지진이 이번엔 여의도 정가를 달궈온 상하이 발 악재마저 뒤덮었다”, 현행 국내 정가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실제로 지난 11일 일본 동부에 몰아닥친 해양 지진이 쓰나미를 동반, 도쿄 인근 해안 도시를 삼켰다.

 

쓰나미, 일본 쓸고 여의도 상륙

 

이 일로 현지 주민들은 물론, 일부 교포가 희생되거나 실종되는 등 극심한 피해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알려진 대지진의 피해자는 사망자 1만여명을 비롯해 실종자만도 줄잡아 10만명을 넘을 기세다. 지난 인도네시아 쓰나미 희생자가 6만여명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실로 어마어마한 피해가 아닐 수 없는 것.

 

일본과 함께 세계 경제를 분활해온 G7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일본에 구조대를 급파하는 한편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이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리와는 전통적 경쟁 관계에 있었던 특수성에도 불구, 사상 유례 없는 대참사를 그대로 지켜볼 수 없다는 여론이 일만하다.

 

이에 따라 민간 구호 단체는 물론, 정부 심지어 정치권까지 나서 피해를 당한 일본에 도움의 손길을 펴야 한다는 이른바 ‘구호 정국’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 마치 전후 복구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구호 활동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 졌다.

 

하지만, 이러한 이웃나라 일본의 비극 앞에 여의도로 대표돼온 국내 정치권의 입장은 미묘할 수밖에 없다. 얽히고 설킨, 이해 관계에 4월에는 향후 정국 주도권의 판도를 결정지을 재보궐 선거가 예고돼 있는 만큼, 정국의 드라이브가 ‘구호 일변도’로 짜여질 경우, 정파별 정치적 셈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욱, 이번 불시의 재난으로 인해 그간 정국을 가름할 것으로 여겨져 온 대형 이슈들이 대부분 수면 아래로 내려앉으면서 향후 판도도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 여야로 나뉘어 첨예한 갈등을 벌여온 정파들의 이해 타산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MB ‘구호 정국’ 진두지휘

 

한편, 이번 소위 ‘구호 정국’의 도래는 기존까지 각종 악재에 내몰려 수세를 면치 못해온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엔 정치적으로 다소 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호재로 통한다. 겉으로야 이웃 나라의 대형 불행에 웃음끼를 보일 수는 없다고 해도, 적어도 2월 정국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온 ‘실정(失政) 신드롬’을 잠재우기에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는 일본에 참사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국정원의 특사단 잠입 해프닝’을 포함, 새해 들어 전격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 사건, 그리고 이달 초 불거져 국제 문제로까지 비화된 상하이 전 총영사의 부적절한 행각과 정보 유출 사건인 ‘상하이 스캔들’이 여기에 속한다.

 

실제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가뜩이나 임기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권력형이라고 할만한 여러 악재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측해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더욱, 대통령들의 집권 후반기 늘상 일어날 수 있는 소위 ‘권력 누수현상’에도 촉각을 세워온 바 있다.

 

문제는 여권의 이러한 우려가 새해 들어 비교적 가시적으로 드러날 기미를 보였던 것. 새해 정국을 달군 3대 쟁점 사건의 여파가 확대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특히 지진 피해에 바로 앞서 터진 상하이 전 총영사의 부적절한 행각은 치정이라는 전통적 사건에 국제 스파이가 개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국에 일파만파 풍파를 일으켜 왔다. 더욱 야권으로부터 외교관의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점을 들어 정권의 말기 증상이라는 비난을 받아왔으며, 4월 선거에서 실정에 따른 심판론을 부추기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과 여권의 4월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특단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대목. 따라서 예기치 않은 일본의 참사는 이러한 이 대통령에 정국 반전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일본의 참사가 수세에 몰렸던 여권에 약으로만 작용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지난해 초 정국을 들어다 놨던 세종시 논란 상황에 기인한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반격으로 수세에 몰렸던 여권에 3월 발생한 서해안 천안함 침몰 사고는 정국 반전의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은 이 대통령은 ‘안보정국’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돌파카드를 통해, 수세를 공세로 바꾸는 괴력을 발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 안보정국에서 치러진 6월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엔 참패라는 치명상을 날리게 되는데, 저변으로 깔려있던 심판론이 막판 표심을 자극했던 것.

 

정치적 이해득실 여전히 안개 속

 

이러한 사례가 지난 선거에 국한될 것이라는 예측은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이는 여권이 모처럼 반전의 기회를 잡아, 정국 주도에 키를 쥐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치 공학적 계산인 셈이다.

한편 사태가 발생한 직후, 당장 급해진 곳이 야권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대해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여권이 지진을 핑계로 쟁점을 회피해선 안 된다”고 경고반, 우려반의 반응을 드러낸 바 있다.

 

특히 민주당은 검찰이 조사를 진행 중인 한상률 사건에 대해서는 국정조사권을, 상하이 스캔들에 대해서도 별도의 조사기구를 만들어 진상 파악에 나설 것을 공언하며 꺼져 가는 불씨 살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이중 상하이 스캔들의 경우, 여권 핵심부의 ‘치정’에 국가 안보가 결부된 실정 사례로 규정, 4월 선거에서 심판론을 띄우는 주요 메뉴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반면, 정국이 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그간의 쟁점들이 대부분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야권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일본 대지진의 여파는 열도를 두 토막으로 가르는 위력을 발휘하며 여전히 재난의 연기를 뿜고 있다. 덩달아 여의도 정치권에도, 참사의 후폭풍이 전달되면서 정파들의 이해에 어떤 영향으로 막을 내릴지 귀추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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