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하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때 수제자 베드로가 즉각 대답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메시야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이 탁월한 대답을 칭찬하시며, 그에게 특별한 약속을 하신다. "내가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천국의 열쇠를 어떻게 천사가 아니라 인간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실수를 반복하는 불완전한 인간에게 어떻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베드로가 받은 천국의 열쇠가 어떤 것일까 의아했다. 그런데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 이선미의 레포트를 읽으면서 열쇠의 의미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피아노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에 관심이 있어서 나는 피아노 반주자 언니가 가장 부러웠다. 나는 매일 교회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서 내 딴에는 진지하게 피아노 연습을 했다. 그런데 하루는 관리집사님이 오셔서 교회의 성물을 함부로 만진다고 야단을 치시며, 내가 보는 앞에서 피아노를 열쇠로 잠갔다. 나는 집에 가서 엄마 앞에서 울었다.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낼 수 없으셨던 엄마는 관리집사님께 찾아가 부탁을 드렸나 보다. 그 이후로 나는 우리 교회의 피아노를 마음대로 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그때의 내가 교회의 반주자가 되리라고 누가 꿈에라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피아노 열쇠를 관리하는 관리집사가 한 소녀의 음악 세계를 열어줄 수도 있고, 닫아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 지식의 열쇠로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다. 과학의 진리를 발견한 과학자는 그 진리의 열쇠로 우리에게 새로운 과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이 과학의 열쇠를 통해 수많은 발명이 이뤄지고, 현대의 놀라운 과학문명이 이뤄지지 않았는가? 아름다운 예술을 사랑하는 예술가는 그 아름다운 열쇠로 우리를 아름다운 예술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교육과 의료봉사에 헌신해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린다. 그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으나 가난해 어린 시절 성당에 있는 오르간을 치며 혼자 음악을 공부했다. 소년 이태석이 자유롭게 연주하던 성당의 오르간은 그에게 아름다운 음악 세계를 열어주는 소중한 열쇠가 된 것이다. 그는 첼로, 색소폰, 클라리넷 등도 독학으로 연주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동요를 작곡했으며, 중학생 때 작곡 부문 상을 받기도 했다.

이태석 신부는 1987년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가 되었으며, 군 복무를 마친 뒤 다시 신학을 전공했다. 의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그는 2001년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마을에 파견되어 교육과 의료 활동을 펼쳤다. 그는 톤즈에 병원을 짓고 하루에 200~300명의 주민을 진료했으며, 한센병을 비롯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보살폈다. 그리고 학교와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이 자립하도록 도왔다. 또한 그는 음악으로 아이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했다.

이태석 신부는 남수단 최초로 브라스밴드를 창단했다. 수십 년간 울려 퍼지던 총성 대신 클라리넷과 플루트, 그리고 트럼펫의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톤즈 마을에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첫 합주가 끝난 뒤 아이들은 "총과 칼을 녹여 그것으로 클라리넷과 트럼펫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며 춤추는 모습은 일상적인 평화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보여준다. 이태석 신부는 그의 아름다운 열쇠를 통해 오랜 전쟁으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톤즈 마을에 진정한 평화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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