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이란 미래에 이루어질 청사진을 미리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공동체의 지도자가 제시하는 비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동체의 비전에 따라 그 구성원들이 앞으로 나아갈 목표와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포스코청암재단이 올해 포스코청암상 교육 부문 수상자로 유해근 재한몽골학교 이사장을 선정했다. 유 이사장은 재한 몽골 학생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고자 1999년 재한몽골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23년 동안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몽골 학생들에게 한국어 교육 및 인재육성 교육을 실시하여 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이주 배경 아동·청소년의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유해근 님은 1992년부터 구로공단에서 외국인 이주민을 돕는 봉사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현재 나그네를 섬기는 '나섬공동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우리 한국인은 오랫동안 단일 민족국가의 국민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국제결혼을 수용하지 못하는 배타적인 문화를 형성하였고, 무의식적으로 혼혈을 무시하는 인종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1990년대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유해근 님은 새 시대의 비전을 품고 그 선두에서 개척자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런데 몽골에서 온 근로자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어린 자녀들을 한국에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갈 곳도 없고 배울 곳도 없는 몽골 아이들은 유해근 님이 섬기는 이주민 센터를 찾아와서 놀았다. 그 아이들에게 우선 한글을 가르치기 사작하여 1999년 7명의 아이들과 함께 몽골학교를 열게 되었으며, 여러 가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한국과 몽골 정부가 인정하는 재한 외국인학교를 개교하여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이주민을 섬기는 봉사와 목회활동을 하면서 유해근 님은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시각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 비전의 능력을 보여준다. 우리 한국은 다문화 사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초고령 사회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에 나섬공동체는 뉴라이프 비전스쿨을 개설하여 시니어 세대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고령사회의 아름다운 삶을 설계하도록 돕고 있다.

나는 2016년 2월 정년 퇴임 후 뉴라이프 비전스쿨 10주 과정을 이수했다. 강좌의 핵심은 '인생에 은퇴는 없다!'는 메시지였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하였고, 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자기 민족의 해방을 위한 역사적인 과업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2016년 10월 우리 시니어 멤버들은 유해근 님이 인솔하는 그리이스 비전 트립을 다녀왔다. 중동의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아테네에는 이미 우리 한국인 봉사자 두 분이 각각 아가페 센터와 사마리아 센터를 세워 난민들과 그 자녀들을 돕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뉴라이프 미션 멤버들은 다음 해 3월 아테네를 다시 찾아가 난민들을 돕는 그들의 봉사활동을 지원하고, 이어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유해근 님이 발에 상처를 입어 여행 출발 당일까지도 치료가 끝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눈과 발 이중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타고 우리와 동행하였다. 세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스라엘의 유적지와 유물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그는 우리에게 생동감이 넘치는 해설을 들려주는 탁월한 인솔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인도에서 온 청년 판가즈 님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우리 성지순례단을 인솔하던 그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시니어 멤버들에게 '다문화·고령화 시대의 비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