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 대신 지방의회가 간선제로 뽑는 방안을 80일 남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장 선출 방식을 다양화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하고 24일까지 각 지자체에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행안부는 지자체장 선출 방식 변경사유에 대해 "각 지자체의 규모와 특성이 다른 만큼 지자체장 선출 방식도 다양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계 등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특성과 단체장 선출 방식 간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는 점에서 행안부의 설득력이 상당히 없다고 보여진다.

행안부가 추진하는 지자체장 간선제 선출에 대한 문제점들을 정리하면 첫째, 지자체장 간선제는 '주민이 직접 투표로 단체장을 선출'하는 직선제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둘째, 지자체장을 지방의회에서 간선으로 뽑으면 지방정부의 권력분립이 이뤄지지 않고 상호 견제 기능도 사라진다. 셋째, 특히 지방의회의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서 지방의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지역 토호들의 입김이 너무 커질 우려가 있다.

행안부의 이번 조처로 '직선제냐 간선제냐'로 벌어질 소모적 논란이 불 보듯 뻔하다. 당장 '대장동 게이트'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성남시의회가 뭘 했는지 보라. 이런 지방의회에 시장 선출권까지 주자는 것인가. 지방의원이 10명도 안 되는 지자체도 적지 않은 현실에서 '지역 토호'가 발호·전횡하는 장치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단체장을 이렇게 뽑으면 대표성은커녕, 견제와 균형의 자치 원리와도 맞지 않는다.

우리 지방자치제는 1991년 지방의원, 1995년 자치단체장 선거 이래 주민 손으로 대표를 뽑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지켜왔다. 물론 부작용이 없지 않다. 선거 때마다 매표행위가 판치고 지방 행정이 불법과 비리로 얼룩지는 일이 허다했다. 지자체장이 지방의회보다 권한이 강해서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그래서 2014년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지자체 기관 구성 다양화를 미래 과제로 선정한 이래 선택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정부와 학계에서 이어져온 것도 사실이다.

자치제의 중요한 '게임 룰' 개정은 대선 와중에 곧 물러날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새 정부가 구성된 뒤 충분한 논의와 공론을 거쳐 법을 제정하는 게 옳다. 6월 지방선거에 미칠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 대선 3개월 뒤에 연장전처럼 이어질 지방선거가 어떤 혼탁 양상을 보일지 모르는 판에 정부가 기름이라도 끼얹겠다는 것인가. 진짜 다른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민주당이 이제 와서 지자체장 선출 방식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30년 가까운 지방자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다. 민주당은 현재 여당으로 기울어진 지방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꼼수로 지자체장 간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정부와 여당은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 뿌리를 흔드는 논의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 박재성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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