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우리 시골 마을에는 라디오가 있는 집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오랜 경험에 의한 지혜와 통찰력으로 다음 날의 날씨를 예측하며 농사일을 했다. 그런데 청개구리는 신기하게도 비가 오기 전에는 '개굴개굴' 정확하게 일기예보를 하는 것이었다. 청개구리가 울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매번 윤리교육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다.

"청개구리가 왜 저렇게 우는지 아니? 옛날에 엄마 말을 안 듣기로 유명한 불효자 청개구리가 살았단다. 엄마가 '뒷동산에 가서 놀아라' 하면, 앞 냇가에 가서 놀고, '냇가에 가서 놀아라' 하면, 뒷동산에 가서 놀고, 이렇게 엄마 말에 반대로만 했지. 그러다가 엄마가 돌아가시게 됐어. 엄마는 아들에게 자기가 죽은 뒤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하면, 나쁜 곳에 묻을까봐 자기를 냇가에 묻어달라고 했단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청개구리는 이제까지 엄마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엄마의 유언대로 엄마 무덤을 냇가에 썼지 뭐니? 그래서 청개구리는 비가 오기만 하면 자기 엄마의 무덤이 떠내려갈까봐 저렇게 '개굴개굴' 슬프게 우는 거란다. 집에서는 엄마 말을 잘 듣고,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해방 이후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내가 1978년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직생활을 시작할 때, 당시 우리나라의 사회 현실은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교육현장도 자율적인 능력을 가진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오던 '청개구리의 전설'을 비판적으로 해석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다. 전통사회에서는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중시하여 충성과 효도와 정절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으며, 충신과 효자와 열녀를 이상적인 인간형의 모델로 제시하였다. 청개구리의 전설은 전통사회가 요구하는 순종의 미덕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우화였던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관계가 평등하다. 따라서 민주시민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불순종의 비극으로 알고 있는 청개구리의 우화도 다시 생각해 보면, 자기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하지 않고, 어머니의 유언에 무조건 순종한 데에 그 비극의 원인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청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결정하라!' 비판정신을 외치는 메시지로 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지난 2월에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메시지를 담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출간되었다. 시한부 암 투병을 하시는 이어령 선생을 제자인 김지수 선생이 인터뷰한 기록이다. 우리 시대 비판적인 지성인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오신 이어령 선생이 우리 후대에게 전하는 절절한 당부이기도 하다. 선생께서는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모든 게 다 선물이었다.."고 고백하시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눈물 한 방울'이라고 하셨다.

"눈물 한 방울이 내가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라네. 이 시대는 핏방울도 땀방울도 아니고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하다네. 자유와 평등은 끝 모르게 싸우지만, 그 사이에 박애가 들어가면 눈물 있는 자유, 눈물 있는 평등이 나오는 거라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네." 그리고 선생은 눈감기 전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차가운 주차장에서 30분 넘게 기다려, "선생님, 돌아가시면 안 돼요!" 눈물짓던 여학생이다. 그 학생의 생뚱맞은 말에 당황하신 선생은 차갑게 한 마디 던지셨다고 한다. "학생! 그게 뭔 소린가? 죽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내 맘대로 하나?" 선생께서는 그 여학생을 만나서, "학생! 걱정하지마. 나 절대로 안 죽어." 다시 말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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