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누가복음에는 '돌아온 탕자'라는 예수님의 유명한 비유가 나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어느 날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재산 가운데서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달라고 요구한다. 이 아들에게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에게는. 부모와 형제, 가족 공동체를 떠나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요구를 묵묵히 들어준다. 아버지의 권위로 아들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고, 어떤 강압적인 강요나 권고도 하지 않는다. 아들의 자율적인 판단과 결정이 가져올 위험성을 염려하면서도 아버지는 아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끝까지 존중하여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 작은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떠났다. 그는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모두 탕진하였다. 더구나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고, 돼지를 치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는 신세가 되었다. 그제서야 그 아들은 제정신이 들었다. '아버지의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자기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어서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지만, 자기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달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아버지의 집으로 귀향을 결심하고 출발했다.

그런데 아들이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알아보고 달려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춘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을 나가던 날부터 매일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돌아온 아들의 이런 고백은 들리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곧바로 하인들에게 지시한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기쁨으로 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여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잔치를 벌였다.

큰아들이 밭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까 동생이 돌아왔다고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평생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자기에게는 관심이 없고, 집을 나가서 재산을 탕진하는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더니, 이제 그가 돌아왔다고 잔치를 벌이다니!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가 나와서 자기에게 다가오자 큰아들이 항의한다.

"나는 이렇게 항상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시다니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아버지는 제가 큰아들인데도 이처럼 불공평하게 대우하십니까? 아버지는 정의와 평등의 원칙을 너무나 무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큰아들은 정의감과 시기심으로 가득차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아버지는 이런 큰아들에게 따뜻한 음성으로 권고한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너의 이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냐? 죽었던 네 동생이 살아서 돌아왔으니, 너도 함께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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