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사도행전에 초대교회의 두 지도자 바울과 바나바가 격렬하게 논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나바는 2차 선교여행에도 자신의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지난번 선교여행 중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온 마가의 동행을 반대하였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에서 끝까지 함께하지 않은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 것이다. 온갖 위험과 어려움이 따르는 일을 인내심과 책임감이 부족한 그에게 또 맡길 수야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바나바는 마가의 과거 실수와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강인한 체력이나 정신력을 갖추지 못했지만, 그런 마가이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훈련의 기회가 필요하지 않은가? 바울과 바나바는 이런 견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심하게 다툰 끝에, 결국 서로 갈라서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출발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남서쪽 키프로스로 떠났다. 그리고 바울은 새로운 인물 실라와 함께 북서쪽 소아시아 지방으로 향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지도자의 의견대립과 충돌이 공동체의 분열이나 불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여행을 위한 동역자 선정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해 각기 자신이 선택한 길로 나아갔을 뿐, 그들의 공동 목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대립으로 인한 선교팀의 분리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논쟁과 선교팀의 분리로 인하여 새로운 인물들이 선교의 동역자로 등장하였으며, 선교지가 유럽까지 확장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마가는 원래 겁이 많고 유약한 청년이었다. 그랬던 그가 그 이후 숱한 고난에 맞서 싸우며 인내하는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엄격하고 강경한 원칙을 강조하는 바울, 그리고 허물과 실수를 용납하고 포용하는 바나바, 두 지도자가 격렬하게 다툰 이유는 마가의 선교여행 동행 여부에 있었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주장은 공동체를 위해서, 그리고 마가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서, 모두가 유익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의 논쟁은 마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다.

마가는 그 후 기독교 역사에서 참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성장하였다. 바울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마가는 그의 곁을 지키는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다. 또한 그는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아들'이라고 부를 만큼 신뢰를 받는 소중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도 마가의 가장 큰 공헌은 신약성경 마가복음서의 기록이다. 그는 예수의 열두 제자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최초의 복음서를 기록한 것이다.

나는 1950년대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부모님이 격렬하게 다투시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성장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농촌 가정이 그랬듯이 아버지는 엄격하시고 어머니는 자애로우셨다. 부모님이 무슨 일로 심하게 다투실 때면, 늦둥이 막내인 나는 극심한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숨을 죽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이 극도로 격해지시면,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에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마지막 한 마디 말씀으로 논쟁을 끝내시곤 하셨다. "그럼, 나가시오!"

그 험악한 분위기로 보아 어머니께서 집을 나가실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문밖으로 나가신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부모님이 겪으신 처절한 고난을 내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 시절 어린 나는 우리 부모님이 자주 다투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최후 통첩 '그럼, 나가시오!'란 말씀에 어머니는 결코 우리 곁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셨고, 다음 날에는 온 가족이 다시 평화로운 새 아침을 맞이했으니, 참으로 신비롭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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