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이종주 기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통신판매·전자거래 등 특수한 형태의 거래에 대하여는 소비자의 권익을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현행 '소비자기본법' 제12조 3항의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은 헌법에 의거해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성문(成文)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헤설픈 종이호랑이와 같은 것인가.

근래에 소비자를 순식간에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사기 사이트가 범람하고 있다. 사기 혐의를 받는 '스타일브이'뿐 아니라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상거래센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비자 피해 내용이 올라온다.

최근 취재한 모 사이트도 그 피해자가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기'라는, 국가가 공인한 낙인만 없을 뿐 그 전횡은 스타일브이 못지않다.

해당 사이트의 한 피해자는 "제발 부탁드린다고 업체에 하소연했더니 환불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전에 상거래센터에도 신고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단다.

명확한 피해 내용을 국가 공인기관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 위에 군림하고, 피해자는 "피해를 당해 죄송하다"며 엎드려 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국소비자원(소보원)을 비롯한 각종 정부 기관에서는 사기 사이트와 피해 다발 업체를 공지하고 있다. 문제는 강제력이다.

최근 취재한 모 업체와 관련된 분쟁에서도 제보자는 "업체가 소보원의 대응에 응답하지 않았다"며 "소보원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부 기관의 중재에도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들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인가. 천민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이들의 표독스러운 발톱을 잘라낼 국가 권력의 칼날은 드디어 무뎌졌는가.

사기 사이트에 피해를 당한 이들은 서로 간에 대응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해결돼야할 일이 사적 차원에서 매듭지어진다. 허울뿐인 국가 권력에 칼자루는 주인을 잃었다.

국민 보호의 의무를 저버린 국가에 의해 피해자에겐 새살 대신 흉터가 남았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은 그들 자신뿐이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렸다. 모두들 거리로 뛰쳐나와 새 시대를 축복하라. 시대정신을 거역하고 국가를 믿은 이들은 후회의 눈물만 흩뿌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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