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8년 중학생들의 윤리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윤리 교육과정의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는 한반도의 통일이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면서 조국의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품고 자랐다. 그래서 한반도 통일의 당위성을 중심으로 편찬된 교과서의 내용은 지극히 쉬웠기 때문에 학생들이 오히려 지루해했다.

나는 교직 첫해의 열정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적인 과제인 조국 통일의 중요성을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며 질문을 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통일이 이루어질까요?"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학생들이 "아니오!"라고 일제히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게 아닌가? "왜 통일이 안 될까요?" 이유를 묻는 나의 질문에도 "북한 때문에요!" 모든 학생들이 일치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과 북이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현재 상황에서 통일의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우리 민족이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해도 통일은 이루기 어려운 과업인데, 우리 국민 모두가 통일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통일에 대한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되지 않겠는가? 나는 그때 비로소 교사로서의 내 임무가 학생들로 하여금 통일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런 '믿음'의 교육 방안을 찾고자 고심하다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1937년 재판 기록을 보게 되었다.

[검사] 당신은 조선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도산] 대한의 독립은 반드시 된다고 믿는다. [검사]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도산] 우리 민족 전체가 대한의 독립을 믿으니, 대한의 독립이 될 것이요, 세계의 공의가 대한의 독립을 원하니, 대한의 독립이 될 것이요, 하늘이 대한의 독립을 명하니, 대한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 [검사] 당신은 일본의 실력을 모르는가? [도산] 나는 일본의 실력을 잘 안다. 아시아에서 가장 센 힘을 가진 나라다.

도산 선생에게 중요한 것은 독립의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아니라, 대한의 독립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었다. 도산 선생에게 있어서 대한의 독립은 우리 민족 전체의 믿음이요, 온 세계가 지지하는 정의인 동시에 하늘의 명령이었다. 일본제국이 1931년 만주를 점령하고, 1937년에는 중일전쟁으로 중국 전체를 위협하는 상황이었지만, 조국의 독립에 대한 도산 선생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3.1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 선생조차도 민족의 독립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마침내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의 날을 맞이하였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에 따라 일본제국을 위한 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에게 광복절은 해방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되었다. 우리는 고귀한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위대한 역사를 보면서 미래에 이루어질 역사에 대한 믿음을 배울 수 있다.

1940년대는 일본제국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한반도에는 우리나라의 정부도 없고, 경찰도 없고, 군대도 없었다. '당신은 조선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순교하거나 감옥에 가야 했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이 질문에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우수한 경찰과 막강한 군대, 그리고 민주주의 정부를 가진 나라이다. '당신은 한반도의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가?' 이 질문은 우리에게 통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요청하는 우리 민족의 지상명령이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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