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이종주 기자] "한국 팬 여러분, 꼭 극장에서 봐주세요"

일본 성우인 타나카 마유미가 영화 '원피스 필름 레드'의 극장 개봉을 앞두고 한 영상을 통해 남긴 말이다. 그것도 개봉 '축하' 영상이었다. 무엇을 축하하기 위함인가.

근래에 '누누tv'(누누티비)라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가 횡행하고 있다. 국내 최신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등이 무차별적으로 올라오는 곳이다.

그 규모와 이용자 수도 압도적이다. 원피스 필름 레드의 경우 5일 기준 극장 관객 수는 19만명뿐이지만, 누누티비 조회 수는 110만회가 넘는다.

언제부터, 어떻게, 누가 운영하는지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사이트가 우리 문화를 짓이기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허우적거리며 문화인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꼴이다.

이 손은 그들의 피땀 어린 결실을 송두리째 휘어잡고 그 새싹부터 잘라내고 있다. 수년간 공들인 탑도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뜨린다. 흩뿌려진 눈물의 무게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정부 당국은 결국 규제가 아닌 방관을 택했다. 이 사이트는 국내 포털을 통해 10초 만에 접속할 수 있는 곳이다. '방관'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전 우리나라를 문화 강국으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이 같은 대규모의 불법 사이트를 버젓이 두면서 '문화 강국'이라. 결국 말은 허공에 떠돌고 글은 허울뿐인 선전으로 남은 것인가.

그러나 정부 규제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이용자가 이용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사이트 이용자가 워낙 많은 탓에 제작자는 숨을 죽이고 눈물을 훔치며 전전긍긍한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떨게 만든 것인가. 불법 사이트인가, 아니면 사이트 이용자인가.

일찍이 맹자는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설파했다. 부끄러움과 맞바꿔 아낀 한 줌의 돈으로 문화 강국 건설에 앞장서겠다는 것인가.

외국의 문화인이 나서서 "극장에서 봐달라"고 호소한다. 그 외침에 모두가 귀를 닫고 입을 막았다. 역시 침묵은 금인가.

창작 의욕을 꺾는 이 불법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류 사이트가 독버섯처럼 퍼지게 된다. 곧 문화 콘텐츠는 그 씨가 마를 것이다.

그때서야 문화 아포칼립스를 앞두고 "나는 종범이 아니다"고 의젓하게 외쳐라. 온 세상이 당신의 편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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