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전 중학생으로 만났던 제자가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닿아 인사를 나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어요?" 50대 후반이 된 제자의 질문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40여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살아오면서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할 만한 게 과연 무엇인가? 여러 과목을 담당하여 많은 것을 가르쳤다고 생각하며 지내온 것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내가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교직 첫해부터 나는 학생으로부터 참으로 소중한 것을 배웠다. 처음 부임한 학교에서 나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 학급 담임을 맡았다. 나는 학생들의 교과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이 지극히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와 참고서를 여러 번 읽게 하고, 연습문제를 많이 풀어보도록 하면 성적이 오르지 않겠는가? 당시 농촌지역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정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 참고서를 구입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학급도서로 참고서를 충분하게 마련해 놓고,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자고 독려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업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교과성적도 별로 향상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들의 교과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학생들에게 강력한 강화 자극을 주어서 학습의욕을 고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학교 2학년 가녀린 여학생들에게 강력한 군사훈련 수준의 혹독한 체벌을 가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강압적인 어조로 호소했다. "기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다. 이번 전국 학력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기적을 이루자."

그런데 한 학생이 담임교사와의 대화 노트에 쓴 한 문장을 읽으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우리가 그 노예 취급을 당할 수는 없는 문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의 인격을 항상 목적으로 대우해야지 결코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간의 고귀한 인격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한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

교사는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리고 가르치는 활동 자체가 자신의 지식이나 기술의 숙련 과정이 되어 그 실력이 더욱 깊어지고 능숙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것은 최상의 학습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 서당의 교수법이 바로 그러했다. 훈장님은 학업 수준이 가장 높은 단계의 학생을 가르치신다. 그러면 그 학생은 다음 단계의 학생을 가르치고, 그 학생은 또 다음 단계의 학생을 가르친다.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의 실력 향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교직에서 정년 퇴임한 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나는 또 새로운 것을 배운다. 세종은 우리 한국어가 중국어와 달라서 자기 뜻을 한자로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들의 고통이 안타까워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그런데 누구나 쉽게 배워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을 400여년 동안이나 가르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한글은 과학적인 체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아주 쉽게 배운다. 이처럼 보배로운 문자인 한글을 두고도 우리 부모 세대가 평생 문맹으로 암흑 속에서 사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한글로 자기의 이름, 그리고 자기 나라의 이름을 쓰며 행복해하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한글 창제에 담긴 세종의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을 다시 배운다.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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