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나 "대공(對共) 수사는 해외와 연결돼 있어서 국내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업무적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이 내년부터 경찰로 넘어갈 경우 우려되는 문제에 대해 다각적으로 보완책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민노총 핵심 간부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 보여진다. 이들은 북한 지령을 받고 민노총 내부 3곳에 지하조직 하부망을 구축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발각된 간첩단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국내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민노총을 집중적으로 포섭하려 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고 당국은 보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2023년에 폐지된다. 2020년 12월 민주당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킨 개정 국정원법에 따른 것이다. 안보 수사에 공백이 우려된다는 반발로 3년 늦춰진 법이 내년부터 시행돼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독점한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뺏는 것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대공수사권을 오용 및 남용하는 것이 문제라 보여진다. 그렇다면 오·남용 이들에 대한 처벌 강화를 했어야 하는데 권한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 정상적인 문제해결 방안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국정원의 수사권을 박탈하자 문재인 정권 내내 국정원은 기능 악화는 물론 조직의 역할 자체가 흔들릴 정도의 취급을 당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결국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노동계에 침투해 국가 위기 및 위난 사태 조장 등의 지령을 수행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간첩에 대한 구속 사례는커녕 수사 자체도 하지 않았다. 결국 대한민국이 간첩들 세상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정원은 최근 북측 지령을 수령한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와 소속 전현직 간부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경남 창원 등지에서 진보 성향 정당의 조직에 침투한 것으로 보이는 지하조직에 대한 수사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대공 수사에 깊숙이 관여한 국정원이나 경찰 관계자들은 직파 간첩보다는 간첩에 포섭됐거나 북한 사상에 동조하는 '자발적 간첩'이 횡행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지난 정부를 거치면서 웬만한 북한 동조로는 처벌받지 않고, 대공 수사를 백안시하는 분위기마저 형성됐다.

경찰은 급조로 전국 56개 경찰서에 안보수사팀을 신설하고 전문인력을 채용했다. 그러나 수십년 대공 수사 경험과 해외 방첩망까지 지닌 국정원을 따라잡을 재간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국정원에 '대공 수사지원단'을 신설해 경찰·검찰과 3각 공조를 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정원이 대공 수사권을 갖도록 국정원법을 재개정하려 해도 절대다수 의석인 민주당이 동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한 뒤 국정원법 재개정을 내년 4월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는 방안도 여권은 검토 중이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박탈은 국정원이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구축한 대공 수사망을 매몰 처리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참으로 어리석은 결정이다. 이렇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복원돼야 한다. / 박재성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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