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환 감독은 '남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이태석 신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를 제작하였다. 그 영화에 이어 그는 <부활>이란 제목으로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를 내놓았다. 이 영화는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 그의 어린 제자들이 성장하여 이룬 기적을 조명한 영화이다.

구 감독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다가 이 신부의 제자들을 생각했다. 그래서 남수단을 찾아갔더니 놀랍게도 의사나 의대생이 된 제자가 무려 57명이 되는 것이었다. 남수단의 작은 톤즈 마을 학교에서 6년만에 국립대 의대생 57명이 나오다니, 그 가난한 마을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후 구 감독은 공무원, 대통령실 경호원, 언론인까지 모두 70명의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단지 출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태석 신부처럼 살기 위해서 의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가 된 제자들이 병원에서 진료하는 모습이 특이했다. 환자를 만나면 먼저 '어디가 아프세요?'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손부터 잡는다. 환자의 손을 잡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진료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한결같이 이태석 신부가 해오던 진료 방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구수환 감독은 '이태석 신부의 제자들이 이 신부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영화 '부활'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태석 신부 제자들이 한센인 마을에 가서 진료 봉사를 했다. 한센인 60명 정도가 사는 마을인데, 300여명의 환자들이 모였다. 주변 마을에서 진료 소식을 듣고 많은 환자들이 찾아온 것이다. 제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진료를 했다. 12년만에 처음 진료를 받는 환자도 있었다. 한센인 환자들은 의사가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 이태석 신부가 자기 곁에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한센병 환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이 신부 이야기만 나오면 환하게 웃었다. 제자들도 이태석 신부가 자기들 옆에 계신 것 같다고 하며 기뻐했다. 이태석 신부의 사랑이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가는 것을 보고, 구수환 감독은 바로 이것이 부활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태석 신부는 2001년 11월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에 부임했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톤즈는 오랫동안의 내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며, 주민들이 살길을 찾아 흩어져 황폐화된 지역이었다. 이 신부는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면서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주민들과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세웠다. 그리고 병원에 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척박한 오지마을을 순회하며 진료를 하였다. 또한 이태석 신부는 학교를 세워 원주민 교육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육으로 시작하여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차례로 개설하였고, 톤즈에 부지를 마련하여 학교 건물을 신축하였다. 그는 전쟁으로 상처받은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쳤으며, 학생들을 선발하여 브라스밴드를 조직하였다.

구수환 감독은 오랫동안 공영방송에서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영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영해도 사회는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태석 신부의 고결한 사랑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저는 톤즈 마을에서 예수를 보았습니다. 허름한 성당의 벽은 포탄에 맞아서 구멍이 뚫렸는데도, 사람들이 성당에만 들어오면 얼굴이 밝아지는 걸 봤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톤즈 마을에 뿌린 사랑의 씨앗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제자들의 가슴 속에서 아름답게 자라 남수단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기적, 부활의 삶이 아닌가? / 유원열 목사·전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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