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승동엽 기자]온 나라가 한일정상회담 관련 이슈로 떠들썩하다. 우리 정부의 강제 징용 해법인 '제3자 변제'를 비롯해 독도, 지소미아, 김대중-오부치 선언, 오무라이스 회동 등 관련 키워드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누구나 예상하듯 이번 정상회담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진영논리를 앞세워 잘잘못을 가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경우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대국민 홍보와 후속조치에 열을 다하고 있다.

보는 이에 따라 저마다 관심 키워드가 다르겠지만 이번 정상회담 결과 최대 이슈는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 해제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즉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3개 품목의 수출규제 조치가 해제된 것이다.

앞서 일본은 지난 2019년 7월 한국을 상대로 해당 품목에 대해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의 대표 수출품인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타격을 입히겠다는 복안이었다. 같은 해 8월에는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도 했다.

일본 기업에 강제동원 피해 배상을 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에 가까웠다. 당시로선 우리 반도체 업계에 치명타였다. 해당 품목들에 대한 대일(對日) 의존도는 마치 '아기새'와 '어미새' 관계 수준이었다.

이 규제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4년 만에 해제된 것이다. 여타 정치 논리 등을 제외하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단어 그대로 '해제' 아니겠는가.

산업계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가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위기다.

다만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이번 수출규제 해제로 그간 우리 반도체 업계가 공들였던 국산화 전략은 중단돼서는 안 될 것이다. 해제는 해제고 우리는 가던 길을 계속 가야한다.

실제로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이후 그간 국내 반도체 업계는 공급망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반도체 소부장 국산화를 추진했고, 가시적인 성과도 달성했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 자료에 따르면 웨이퍼 식각과 불순물 제거 공정 등에 쓰는 불화수소의 일본 의존도는 2019년 32.2%에서 지난해 7.7%로 24.5% 포인트 낮아졌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제작 등에 활용하는 불화 폴리이미드 의존도는 같은 기간 42.9%에서 33.3%로 9.6% 포인트 감소했다. 반도체 회로를 새길 때 쓰는 포토레지스트의 의존도는 88.3%에서 77.4%로 10.9% 포인트 하락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소부장 국산화의 지렛대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해당 품목들에 대한 100% 국산화에 도달하지 못한 만큼 고삐를 늦출 수는 없다. 전 세계 포토레지스트의 90%, 불화수소 7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일본의 영향력도 여전히 크다.

여기에 반도체 소부장 상위 10대 수입국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한국의 상위 10대 수입국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소재의 경우 2015년 87.6%에서 지난해 상반기 93.7%까지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은 같은 기간 동안 83.5%에서 91.0%로 올랐고 반도체 장비는 88.9%에서 96.6%로 상승했다.

물론 단기간에 모든 걸 이루자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펼쳤던 '생존' 전략의 끈을 놓지 말자는 얘기다.

모처럼 반도체 업계에 희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마침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다. 정부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삼성전자의 300조원 투자 소식도 전해졌다.

꽁꽁 얼어붙었던 반도체 업계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소부장 국산화 노력에 더욱 힘써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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