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이종주 기자] "검사기관만 수십 개인데 저희로서는 정말 답답합니다. 같은 제품을 같은 검사소에 맡겨도 때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판국인데요."

최근 모 식품 업체 관계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궁금한 것이 있어 답을 듣자 하니 그는 연거푸 답답한 심경만 토로했다.

올해 초부터 닭가슴살 성분과 관련된 논란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다수의 식품 업체가 닭가슴살 성분 표기에 지방·탄수화물 함량은 낮추고, 단백질은 높여서 표기했다는 논란이다.

논란은 한 유튜버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지난해부터 운동인이 즐겨 먹는 닭가슴살 제품을 직접 검사소에 성분 분석을 의뢰, 그 결과를 대중에 공개해왔다. 소규모 업체부터 이름만 대면 삼척동자도 알 만한 규모의 업체까지 모두 밝혔다.

그 결과 영상에서 사명이 밝혀진 업체들은 매출과 브랜드 인지도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한 업체는 홈페이지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리고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구독자가 60만명이 넘는 대형 유튜버도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자체 쇼핑몰을 통해 출시한 닭가슴살 제품의 탄수화물·나트륨 함량 표기는 높이고, 단백질 함량 표기는 낮췄다는 것이다.

해당 논란에 대해 몇 차례 보도하면서 각기 다른 업체 관계자 4명에게 경위를 물었다. 놀랍게도 이들 모두 판에 박힌 듯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검사를 맡긴 기관도 국가 인증기관이다"라는 것이다.

업체들은 제품을 내놓기 전에 제품 성분을 분석하는 시험검사기관에 의뢰해 결과를 통보받고 이를 제품에 표기한다. 문제는 그 검사기관이 전국 팔도에 수십 개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A기관에서 받은 성분표를 토대로 제품에 표기하고 판매하는데, B기관에서 검사받은 성분표가 이와 달라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두 기관 모두 국가에서 인증 받은 검사기관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이들 업체는 식품표기법 위반임과 동시에 위반이 아니게 되고, 잘못이 있음과 동시에 잘못이 없음이 된다. 소비자를 기만한 비윤리적 기업이면서 동시에 무고한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논란이 된 업체의 상당수가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사가 받아온 검사기관의 성분표를 앞다퉈 공개하기도 했다. 국가 인증기관에서 성분표를 받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비윤리적 기업으로 낙인찍힌다면 이는 누구의 책임인가.

모 업체는 아예 논란을 피하기 위해 분석표에 표기된 수치보다 단백질 함량 표기는 낮추고, 지방·탄수화물은 높인다고 했다.

이 같은 검사 절차를 현행대로 유지하면 어느 기업이 마음 놓고 기업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때에 따라, 기관에 따라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선을 넘나다녀야 하는 판국에 말이다.

한 기관에서 모든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적어도 국가 차원에서 명확하고 통일된 기준을 제시해 적용해야 한다. 업체·소비자 양쪽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 말이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