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지혜의 대명사로 불리는 왕이다. 솔로몬 왕이 통치할 때 이스라엘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었으며,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지 않고 지혜로운 외교를 통해서 국제적인 평화를 유지하였다. 이처럼 화려한 부귀와 영화를 누린 솔로몬 왕이 뜻밖에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탄식을 한다. 온갖 재물과 부귀와 명예, 그리고 우리가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결론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의 본분을 지키라'고 권고한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것, 이것만이 우리에게 가장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전쟁, 지진, 홍수, 질병과 빈곤 등 온갖 재난이 그치지 않는다. 이런 피할 수 없는 재난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인도적인 도움의 손길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가? 이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이런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며, 이런 사람들이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가람(가명, 70) 씨는 내가 만난 학생 중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고려인이다. 그는 한글을 읽고 쓰는 정도라도 배우고자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이태원에서 동대문까지 비가 오는 날에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출석한다. 그러나 아직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니, 이가람 씨의 한국 생활은 참으로 외롭고 고달프다. 주말에 한강 둔치에서 홀로 종일 낚시하는 일이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한글 모음을 배우면서 '아기'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이가람 씨가 갑자기 크고 정확한 발음으로 "애기 운다, 가봐라, 빨리!"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가람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배운 고려인 말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이가람 씨가 구사하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말은 60여년 전 우리 고향 마을 우리 아버지 세대의 언어와 많이 닮았다. 이가람 씨 할머니는 러시아어도 모르고, 우즈베키스탄어도 몰라서 고려인 말을 사용하며 집에서 가족들과만 지냈던 모양이다. 이웃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삶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가슴이 저려온다. 그런데 이제 이가람 씨가 가족들과 함께 그 할머니의 나라 대한민국에 돌아와 이방인처럼 다시 고달픈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한글 쓰기' 연습을 하던 이가람 씨가 잠시 멈추더니 고려인 말로 더듬더듬 나에게 호소한다. "선생님! 나에게 꿈이 하나 있어요. 둘도 아니고, 하나요. 러시아에 있는 삼촌이 보고 싶어요. 내가 어렸을 때 4년 동안 삼촌 집에서 살며 학교에 다녔어요. 삼촌이 지금 85세인데, 삼촌 살아생전에 한 번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어요." 평소 무뚝뚝해 보이던 분이 연로하신 삼촌이 그리워서 울먹이는 어조로 청소년 시절 자신에게 도움을 주신 삼촌을 찾아뵙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꿈'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가람 씨의 간절한 소망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전쟁의 비극으로 인한 슬픈 역사를 돌이켜 보게 된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식민통치를 피하여 러시아의 동부 연해주로 이주한 우리 동포들이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 고려인으로 정착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냉전으로 인해 고려인들은 우리 대한민국을 방문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1990년대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이 해체되면서 고려인들의 고국 방문이 자유로워졌지만, 가족과 친척들이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이산가족의 고통을 늘 안고 지내야 한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남한과 북한 이산가족의 가슴 깊이 맺힌 한을 풀어주는 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가장 절박한 과제가 아닌가? / 유원열 목사 - 전 백석대학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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