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박사. 사진=뉴시스
인요한 박사. 사진=뉴시스

인요한 박사는 그의 저서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에서 자신을 순천 토박이 한국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어린 시절 그가 미국 국적과 전형적인 서양인의 외모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외국인 자녀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다.

나는 그가 전라도 사투리를 익숙하게 사용할 만큼 한국 아이들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인 박사의 집안이 1895년 조선에 입국한 유진 벨 선교사 이후 4대에 걸쳐서 우리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극진히 사랑하면서 의료와 교육과 선교에 크게 이바지하며 헌신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 5월 연세대학교 의예과 1학년 재학생이던 20대의 청년 인요한은 순천의 고향 집에 왔다가 당시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현장을 찾아간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생명의 안전을 위하여 광주를 떠나 다른 곳으로 피신해야 했던 그런 상황에서 그는 오히려 광주 시내 중심으로 들어갔으니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가? 죽음을 각오한 그의 결단이 나는 참으로 놀랍고, 고마웠다.

그는 미국 대사관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계엄군의 검문을 통과하여 광주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5월 25일 그는 광주 그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그날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는 거기에서 그의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 이중언어 능력으로 외신기자 회견을 통역하여 당시의 상황을 온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1919년 우리 민족의 3.1운동을 온 세계에 알리고 전했던 것처럼, 그날의 외신기자 회견과 그의 통역이 5.18민주화운동의 한 중요한 부분을 온 세계에 알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인요한 박사는 5.18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매우 소중한 토대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광주 시민은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대화 한 토막을 전한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해 왜 보복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전 대통령은 "보복이란 것은 몹쓸 것이여!' 말씀하시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만델라의 교훈을 들려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전임 대통령을 모두 초대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불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정의감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용서를 가로막기도 한다.

그러나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가져오기에 끊임없는 복수의 연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의 경구를 거듭 되새기게 된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마라!(Forgive, but Remember)!"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를 마친 겟세마네 동산에 가룟 유다가 칼과 몽둥이를 든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체포하러 왔다. 이때 제자 베드로가 스승을 지키려고 칼을 빼어 휘둘렀다.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를 타이르며 말리신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

불의한 일을 보면 누구나 분노하게 되고, 불의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분노가 폭력으로 이어지면 그 폭력이 다시 분노를 일으켜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폭력을 초래하기 쉬운 분노의 감정이 비폭력 평화의 방법으로 승화되어 나타날 때 위대한 사랑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반드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1980년 5월 그 고귀한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용서와 화합을 통해 우리 민족이 평화와 번영,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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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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