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버스 차고지(해당 사진은 칼럼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뉴시스.   
서울 시내 한 버스 차고지(해당 사진은 칼럼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뉴시스.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의 시기와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바꿔말하면 해고의 사유가 정당하지 않거나 해고의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부당해고가 되는 것이다.

근로자가 해고당한 후, 해고가 부당하다고 여기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통해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의외의 복병이 존재한다. 바로 해고의 존재 여부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부당해고로 인정받으려면 일단 '해고'를 당해야 한다.

해고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인데, 현실적으로 관리자가 이러한 해고의 의사표시를 해고통지서 교부와 같이 명시적으로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면 관리자는 해고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근로자는 해고당한 것이라 주장하며 해고의 존부에 관한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 관련 눈여겨볼 만한 대법원 판결이 있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사실관계는 이렇다. 전세버스 운송회사에 입사해 통근버스 운행을 담당한 근로자가 입사 후 두 차례 무단결근을 했다. 이를 이유로 관리팀장은 관리상무를 대동해 버스키를 회수했고, 근로자를 불러 질책하다가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사표를 쓰라고 수차례 언급했다.

이에 근로자는 본인을 해고하는 것이냐고 되묻고는 관리팀장이 이를 긍정하자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사직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근로자가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자 회사는 해고 자체를 부정하며 무단결근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하라는 취지로 정상근무독촉통보를 했다.

근로자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노동위원회는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기각했다. 재심도 이를 유지했으며 근로자가 이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도 '관리팀장의 사표 쓰라는 발언은 말다툼 과정에서 나온 우발적인 표현으로 사표를 쓰라고 종용한 것에 불과하며, 관리팀장에게는 해고 권한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이를 달리 보았다. (대법 2022두 57695) '해고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묵시적 의사표사에 의한 해고가 있는지 여부는 사용자의 노무수령 거부 경위와 방법, 노무 수령 거부에 대하여 근로자가 보인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용자가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확정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이 사건에서의 관리팀장의 언행을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의사표시라고 보았다.

통근버스 운행자로부터 버스키를 회수한 것은 노무를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여지는 점, 관리팀장에게 해고 권한이 없다고 하더라도 버스키 회수에 해고권한이 있다고 여겨지는 관리상무를 대동하는 등 관리상무의 관여 정도, 소규모 회사 특성상 근로자의 노무수령 부재가 끼치는 영향이 큰데도 불구하고 약 3개월간 무단결근을 문제 삼지 않은 정황을 비추어보면 회사 대표가 관리팀장의 사표 쓰라는 발언을 묵시적으로 승인했을 소지가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결과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해당 사안에서 관리자가 한 사표 쓰라는 발언은 여러 정황과 맞물려 결국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로 인정됐다. 물론 이러한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의 존재 여부는 사실관계에 따른 여러 제반사정을 고려해 판단된다.

따라서 단순히 사표를 쓰라는 발언이 있었다고 해 이를 두고 곧 해고라고 볼 수는 없지만 실무상 해고의 가면을 쓰고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강도 높은 사직 강요가 사용자의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로 인정될 수 있음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조애리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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