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편집국장
김영 편집국장

지난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현직 대통령이던 조지 H.W. 부시 공화당 대선 후보에 맞서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란 캐피 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조지 H.W. 부시 집권기 미국은 냉전 상대였던 소련이 붕괴하며 정치·군사적으로 세계 유일의 최강대국 반열에 올랐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현직 프리미엄과 함께 강한 미국 이미지를 앞세워 재선에 도전했는데, 40대 젊은 대통령 후보였던 빌 클린턴이 부시 행정부의 최대 약점이던 경제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부시가 외쳤던 강한 미국보다 빌 클린턴이 언급한 잘 사는 미국을 당시 미국인들이 더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그 어떤 정치·외교 현안보다 경제가 최우선 관심사일 거라 보는데, 정작 정치권에선 여전히 국민 실생활과 동떨어진 이슈몰이에 집중하며 네 탓 공방만 펼치고 있다.

최근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싱하이밍 중국 대사간 회담 내용을 꾸준히 문제 삼고 있다. 김 대표와 면담 자리에서 싱 대사가 우리 국격을 훼손시켰다는 것으로 여당에선 중국 정부를 향해 싱 대사의 경질까지 요구했다. 이 대표를 향해서도 제1 야당 대표가 중국에 이용당했다며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야당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일본 오염수 처리를 두고 정부·여당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오염수에 대한 위험성 우려가 적지 않은데 우리 정부가 앞장서 오염수 방류를 두둔하고 나서는 게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자 친일적 행위라는 지적이다.

중국 측의 무례한 발언이나 일본 오염수 방류가 가벼운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단지 이 같은 논쟁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경제 현안 보다 우선한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펜데믹 후 한국 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 10년간 삼성·SK를 넘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반도체 산업이 공급 과잉 속 쌓이는 재고 등으로 역대급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업황 사이클이 근본적 문제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소될 순 있겠으나 당장 감당해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반도체 파운드리와 함께 우리 경제 차세대 핵심사업으로 손꼽혀 온 이차전지는 기대와 달리 갈수록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보급률 증가 폭 자체가 업계 예상치를 하회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시장을 독점한 현지 업체들과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조선업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쌓인 수주물량 덕에 올 하반기부터는 조선 3사 모두 흑자 전환 전망이 나오곤 있으나, 고질적인 인력난 문제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인력난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조선업의 정상화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서민 경제 어려움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금리 부담이 여전한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는 장기 침체 전망이 나오고 있다. 꾸준히 늘어나기만 하는 가계대출 부담은 우리 경제의 잠재적 최대 위험 요소로 거론되고 있다.

군사적 최대 위협이 해소된 1992년 미국과 안보 불안이 여전한 2023년 한국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긴 힘들겠으나, 경제가 최우선 과제라는 건 그때 미국이나 지금 한국 모두 같다고 본다.

오히려 세계 최강국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꾸준한 성장이 필요한 우리이기에 경제 현안 해소는 더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대립 격화 우려에도 불구 대만 보호에 우선하는 것 역시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기지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이제부터라도 우리 정치인들이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 외치며 정쟁이 아닌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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