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긴급문자 오발송건에 발언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긴급문자 오발송건에 발언하고 있다. 

지난 5월 31일 오전 6시 32분쯤 서울시에서 발송한 긴급재난 문자를 받았다. 처음 접해 보는 경계 경보 메시지이다. 북한이 예고한 미사일을 발사했나보다 생각하며, 추가 메시지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불안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경계경보는 오발령이었다는 행정안전부의 긴급재난 문자가 도착했다. 이미 발령된 경계 경보가 오보였다는 문자 메시지가 위기 경보 자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게 될 터이니,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리고 7시 25분경에는 서울시에서 보낸 경계 경보 해제 문자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이런 혼란스러운 위기 경보 뉴스가 세계의 모든 나라에 전해졌으니, 얼마나 부끄럽고 또 위험한 일인가?

코로나19로 인해 긴급재난 문자 발송이 과도하게 많아지면서 위기 경보 자체에 대해 경계심이 약화된 데다가 이번 일로 인해 재난 경보 체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을 터이니,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위기 경보 체계를 완전하게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1592년 임진왜란으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의 역사에 대해 수없이 여러 번 들으며 자라왔다. 임진왜란 전 일찍이 이율곡 선생이 외적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지만, 조선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5세기 후반 일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하여 전국을 통일하고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국내 통일에 성공한 도요토미는 대륙 침략의 길을 모색하였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통신사를 파견하여 일본의 실정과 도요토미의 저의를 탐지하기로 한다.정사에 황윤길, 부사에 김성일로 통신사 사절단이 결정되어, 통신사 일행은 1590년 3월 서울을 출발하여 7월 22일에 일본의 경도에 도착하였다. 조선 정부에서는 통신사의 파견을 결정지을 때는 그 가부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으며, 통신사 일행이 돌아온 뒤에는 그 보고 내용을 놓고 다시 논란이 벌어졌다. 서인 황윤길은 일본이 많은 병선을 준비하고 있어서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며, 도요토미는 눈빛이 빛나고 담대한 책략이 있어 보인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반하여, 동인 김성일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할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도요토미는 그 사람됨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없어 보인다고 하였다.

이들 상반된 보고를 접한 대신들 사이에는 정사 황윤길의 말이 옳다는 사람도 있었고, 부사 김성일의 말이 맞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동인과 서인의 정쟁이 격화되었으며, 사실 여하를 묻지 않고 자기 당의 사절을 비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정부는 결국 김성일의 의견을 쫓아 국방을 위해 서두르던 일마저 중지시켰다. 다만, 전라좌수사 이순신만이 전비를 갖추어 적의 침입에 대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일본의 침략 계획이 무르익어 서양에서 전래된 새로운 무기인 조총을 대량 생산하여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1970년대에도 '한반도에 전쟁 위험에 있다, 없다'는 두 견해로 격렬한 찬반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근거를 강조하면서 상반된 견해를 주장하는데, 우리는 어느 편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때 양호민 박사가 짧게 제시한 한 마디가 내게는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전쟁의 위험이란 있다면 없고, 없다면 있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국방을 튼튼하게 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방심하여 국방을 소홀히 하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논리이다. 우리는 재난의 위험에 철저하게 대비하여 재난을 예방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무책임하게 방심할 때, 재난은 항상 순식간에 우리를 덮치기 마련이다.

유원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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