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현충원. 사진=뉴시스
국립서울현충원. 사진=뉴시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민주주의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운 도시국가이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정치의 안정과 경제의 번영뿐만 아니라 학문과 예술과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위대한 발전을 이루었다.

민주주의 도시국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는 강한 군사력을 갖추어 당대 최강의 대제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에 이른다. 이 전투가 소수의 그리스군이 대제국 페르시아군을 격파한 유명한 마라톤 전투이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 제국 원정군이 아테네를 공략하기 위하여 마라톤 광야에 상륙하였다. 소수의 그리스군은 페르시아군의 취약한 양쪽 날개 부분을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이 6400명의 병사를 잃은 데 반하여, 그리스군 전사자는 192명에 불과하였다. 소수의 병력으로도 지혜로운 전술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전쟁이다.

구약성경에는 기드온 300명 용사의 전투 이야기가 나온다. 미디안 연합군 13만5000명이 이스라엘에 침입하여 진을 치고 있었다. 이에 맞서는 이스라엘군의 병력은 3만2000명이었다.

이때 이스라엘군을 지휘하는 기드온은 "누구든지 두려운 자는 병영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라"며 병력 감축 명령을 내린다. 적군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병사는 전쟁에 승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군보다 월등하게 많은 적군 앞에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용기가 없이는 결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2만2000명의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1만명의 병사가 남았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지휘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선을 떠나지 않은 군인들의 용기가 얼마나 훌륭한가?

그런데 기드온은 남은 병사들을 물가로 인도하여 물을 마시게 한다. 그리고 그는 병사들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전투에 참여할 정예병을 선발하였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물을 마시는 자와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시는 자를 구별하여,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신 300명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무리 용감한 군인이라도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군인은 아무리 목이 말라도 적군의 공격을 경계하며 물을 마셔야 한다. 초소를 지키는 군인은 아무리 피곤해도 졸거나 잠을 잘 수 없는 일이다. 군인은 밥을 먹거나 잠을 자면서도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1999년 6월 30일 경기도 화성시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로 잠자던 유치원 어린이 19명이 숨지는 참사가 있었다. 그날 소망유치원생 18명 전원이 사망한 301호실에는 인솔교사가 없었다는 뉴스에 온 국민이 얼마나 가슴 아파했던가? 아들 김도현을 하늘나라에 보낸 김순덕 씨는 유사한 화재사고가 다시 발생하자 어린 자녀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조국에 너무 실망하여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그렇지만 씨랜드수련원의 그 처참한 불길 속에서도 제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바친 빛나는 이름이 있다. 마도초등학교 교사 김영재 선생님, 그리고 레크레이션 강사 박지현, 채덕윤, 서태용 선생님 세 분이다.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전원이 생존하였는데, 인솔교사 김영재 선생님 한 분이 돌아가셨다.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간 선생님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용기와 책임감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시민들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각기 자신이 맡은 일에 이런 용기와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때, 민주주의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개인적인 출세와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몰두하여 사회 전체가 부패하고 타락하면, 민주주의 국가는 쉽게 몰락하고 만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아테네가 군국주의 스파르타와 대결한 펠로포네소스 전쟁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거듭 가슴에 새겨야 한다.

/유원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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