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계 미국인 사회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릭 프롬
독일계 미국인 사회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릭 프롬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인류의 영원한 문제인 사랑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사회의 모든 인간관계,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심지어 연인들 사이에서조차도 진정한 사랑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에릭 프롬은 근대 이후의 낭만주의 사조가 현대인이 사랑의 능력을 상실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루소의 이 메시지가 현대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루소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지극히 선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인간이 토지와 재물을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불평등한 사회와 제도를 형성해 부패하고 타락한 문명을 건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자연으로 돌아갈 때 지상에는 행복한 낙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낭만주의 문학과 예술은 사랑을 인간의 순수한 감정이라고 보아 이런 사랑을 지극히 아름답게 묘사했다. 윤리와 도덕의 위선을 뛰어넘어 오직 순수한 감정에 충실한 사랑을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예찬한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이런 아름다운 사랑에 빠지는 환상을 끊임없이 동경하는 것이다. 루소는 그의 '고백록'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대로 사랑하고 헤어졌던 많은 여인들과의 사랑 이야기를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 교육의 새 길을 연 위대한 교육 사상가로 존경을 받으면서도 자기 자녀들을 모두 고아원에 맡기고 양육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가 이런 비난을 받게 된 것은 자연을 예찬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한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에릭 프롬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art)이라고 강조한다. 사랑은 자연적으로 느끼는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사랑을 누구나 저절로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려고 애쓰면서도, 사랑에 실패하는 원인은 사랑하는 기술의 미숙성에 있는 것이다.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70대에 19세 소녀에게 연정을 느끼며 청혼을 할 만큼 열정적인 사랑을 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인들은 그런 괴테의 모습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된 고결한 사랑이라고 여기며, 그를 부러워하고, 존경하기까지 한다.

프롬에 의하면, 사랑은 배우고 연습하고 훈련해 키워야 하는 인간의 능력이다. 사랑의 기술은 관심과 배려, 책임과 존경, 그리고 오래 참는 인내의 훈련을 요구한다.

어린 소년 소녀나 유부남 혹은 유부녀에게 끌리는 감정을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미화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현대인들은 사랑을 아름다운 감정으로 미화한 낭만주의 예술에 도취되어 사랑을 배우고 가르치며 훈련하는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자연으로 돌아간 인간은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삶을 지향하게 마련이다. 자연으로 돌아간 인간의 본성이 과연 선하고 아름다운가?.

계속 발생하는 영아 살해 유기 사건 뉴스를 접하면서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짐승들의 세계에도 이런 일은 없지 않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고귀한 존엄성을 지닌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윤리와 규범의 가치를 존중하며, 가정과 사회와 다양한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반투족에게서 우분트(Ubuntu) 이야기를 듣는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달려서 행복의 열매를 함께 나누는 지혜로운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반투족 마을 아이들의 사랑을 배운다. 우분트!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행복할 수 있나요?" 우분트, 당신이 있기에 우리 모두가 있다.

유원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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