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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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군사부일체'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성장했다. 왕권은 이미 사라졌지만, 어른들이 우리에게 스승의 권위를 존중하라고 가르칠 때마다 전통사회의 중요한 경구로 이 말을 인용하곤 했다. 대통령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처럼,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만큼 그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인권과 평등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부당한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에 온 열정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모든 권위가 무너지고, 이제 어떤 권위도 존중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대통령의 권위, 부모의 권위, 교사의 권위를 존중하는 사람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그러나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는 곧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권위의 부재로 인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 전체가 각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통사회로 돌아가 옛 권위를 다시 회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선출된 지도자의 권위나 임기에 따른 한시적인 지도자의 권위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성숙한 민주사회를 형성해야 한다.

베들레헴 벌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 소년 다윗은 불레셋의 장수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으로 부상하였다. 그리고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다윗은 온 국민이 존경하는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러자 사울왕은 다윗의 인기가 자신의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여 충성스러운 신하인 그를 죽이려고 결심한다. 다윗은 억울하게도 광야로 피신하여 숨어서 지내는데, 사울왕은 군사를 이끌고 끊임없이 그를 추격한다.

그런 다윗에게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차례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사울왕의 생명을 결코 해치지 않는다. 사울왕이 자신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하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끝까지 왕의 권위를 존중한다. 결국 사울왕과 그의 아들들이 전쟁터에서 모두 사망하기에 이른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다윗은 사울왕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조가를 지어 온 백성이 그 노래를 부르게 한다. 사울왕은 부당하게 자신을 죽이고자 하였지만, 그는 하나님이 부여한 왕의 권위를 끝까지 존중하는 자세를 지켰다.

자녀는 자기의 부모가 단지 자기의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생은 자신을 가르치는 교사를 존경하고, 그 권위를 존중해야 마땅하다. 학생이 교사를 무시하는 상황에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므로 학부모는 자녀들에게 교사의 권위를 존중하고, 교사에게 감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우리 미래 세대의 교육을 위하여 우리는 민주사회에 적합한 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교사의 권위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을 때 비로소 설 수 있는 것이다. 교사가 존경과 신뢰를 받으려면 교사로서의 인격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사 자신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정부 당국이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따라서 교사 교육과 교사 연수를 지원하는 획기적인 정책 또한 절실하다. 1990년대 중반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하면서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교육의 일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유치원과 초중등학교 교사들에게 해외여행이나 해외연수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 절감하였다. 우리나라는 최근 급격히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고도로 전문화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미래 세대의 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의 권위를 세워야 할 국가적인 과제 앞에 서 있다. 교사의 권위를 세워야 진정한 교육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유원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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