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이종주 기자]최근 SPC 계열사 공장에 또다시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SPC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전국적인 SPC 불매운동이 일어났는데, 올해 또 다시 사고가 발생하자 그 불씨가 다시금 지펴지고 있다. 

다만, 양년간 2명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게 SPC 불매운동의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21년 한 해 동안 산업현장에서 2080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단순 계산하면 매일 5.7명이 사망한 꼴이다. 매일 5.7명이 산업현장의 아지랑이로 산화하는 나라에서 특정인의 죽음만이 보도되고 기억된다.

산업현장에서 가장 많은 사망사고를 내는 업종은 건설업이다. 모 건설사의 경우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이후로도 8명의 사망자를 냈다. 그럼에도 특정 건설사를 불매한다거나, 그 일환으로 특정 부동산을 매입하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지엄한 엄포는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다.

제조업에서도 건설업만큼이나 많은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모 식음료업체 공장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리프트에 끼어 사망했고, 같은 해 4월 모 유업체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야근 중에 사망했다. 양사 모두 사명(社名)이 공개됐지만 불매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SPC는 그야말로 '당첨'된 것이다. 이 얼마나 편리한 불매운동인가.

SPC 불매운동이 전국적인 유행을 타게 된 것은 언론의 영향이 컸는데, 불매운동의 불씨를 횃불로 타오르게 한 데에는 '시대정신' 페미니즘이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보여진다.

지난해 사망사고의 희생자가 20대 여성이라는 점이 알려지며 각종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차별적인 노동구조로 인해 여자가 죽었다'는 내용의 사발통문이 나돌았다.

이 같은 내용의 글은 곧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도배했고, 언론도 담론의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고자 불철주야 노력했다. 페미니즘의 기초 교리인 피메일 본딩(Female bonding·여성 간의 유대)도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올해는 지난해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도 주목해 볼 부분이다. 최근 사망한 근로자 역시 여성이지만 50대였다. 사망자의 연령대가 밝혀지자 지난해엔 페미니즘 담론 활성화에 앞장섰던 '계몽가'들은 자취를 감추고, 바야흐로 온 국민의 기업 멍석말이가 시작됐다. 오호통재라, 이들 계몽가에게 중요한 건 '성별'뿐만이 아니었나니.

이쯤에서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갈 점은 잇따른 사망사고의 책임에서 SPC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우리나라 헌법 제 10조에서 천명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설명으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 이유만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SPC에서 사망한 두 근로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지난해 SPC에선 사망사고 직후 사고 장소를 천으로 가려놓은 채 직원들에게 작업을 시켰다고 알려졌다. 가히 천민자본주의의 온상이라 칭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금 묻고 싶은 것은 불매운동의 형평성이다. 우리는 과연 중대재해의 책임이 있는 모든 기업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가? 물론 'SPC의 사후처리가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면 일면 타당한 논박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윤리와 도덕이라는 이름의 잣대를 다른 모든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불매운동 본연의 목적은 기업의 매출에 타격을 줌으로써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인데, 이것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선택적 운동으로 번진다면 그것은 불매운동의 탈을 쓴 변종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소비자는 소비를 함으로써 재화와 용역을 얻고, 이를 통해 주관적 만족인 효용을 추구한다. 이번 불매운동의 경우 참여자는 외려 비(非)소비로 효용을 추구하고 있다. 이 효용은 과연 불매운동가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주산물인가. 아니면 특정 정치적 세력으로부터 촉발된, 데마고기적 성격을 띤 부산물인가.

불매운동은 기업을 상대로 소비자가 적법하게 취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다. 우리는 이 날카로운 검을 반드시 공평하게 휘둘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를 취사 선택하고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주체는 소비자 개인이다. 

끝으로 진심을 담아, 사망한 두 노동자의 유가족에게 차마 형언할 수 없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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