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편집국장
김영 편집국장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임에도 냉전이란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의 안보 보장을 방패 삼아 빠르게 경제를 회복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전쟁은 일본 경제 부활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거쳐 1980년대 일본은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도 성장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영광은 없었다.

1990년 1월 증시 폭락을 시작으로 일본 버블 경제는 무너져 내렸다. 주식에 이어 부동산 자산가치가 폭락했다. 일본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제조업은 한국과 대만 등 신흥국에 밀리며 경쟁력을 상실했다. 고베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등 자연재해는 일본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2000년대 들어선 고령화 문제가 본격화됐고, 밀레니엄 시대 대세 산업으로 떠오른 IT 경쟁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일례로 당시 일본에선 공무원들이 이메일 대신 팩스 이용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따른 일본의 경제 침체는 자그마치 30여 년에 이른다. 해방 이후 오랜 시간 극일(克日)의 정신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오늘날 일본이 더 이상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지금 다시 일본을 배우자고 하는 건 지난 30년간 일본이 겪어 온 여러 위기가 현재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펜데믹 당시 치솟았던 주식 시장 거품이 빠르게 꺼지고 있다. 고점을 찍고 내려온 부동산 경기는 인구 감소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반등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 장담키 어렵다. 일본 제조업을 뛰어넘어서는 데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영입이익 급감은 가히 충격적일 할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사회 활력 감소는 일본보다 우리에게 더 시급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일본에게서 무얼 배울 수 있을까?

최근 일본 경제는 작게나마 개선의 기미를 보이긴 했다. 지난 2010년 일본 정부의 양적 완화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가 무조건 실패할 것이란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 10년간 유지되며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체돼 있던 일본 근로자들의 실질 소득 수준 역시 최근 들어 다시금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일본 경제 회생 전략을 따르자는건 아니다. 우리가 일본과 같은 길을 가긴 힘들다. 아베노믹스가 가능했던 건 세계 3위권인 일본의 경제 규모와 버블 경제 시절 일본 기업들이 사둔 해외 자산 덕분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일본 은행이 엔화를 찍어냄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외화가 지속적으로 들어왔기에 이 같은 전략이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는 우리가 따라 할 수 없는 방법이다. 되레 우리는 일본이 무너졌던 이유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던 일본이 일순간 무너졌고 반등 기회조차 쉽사리 찾지 못했을까에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의 장기 침체 원인은 여럿이 있을 것이다.

우선 미국의 강압 속 엔화 평가절상을 이끈 '플라자합의'를 체결한 것부터 시작해 역시나 미국 요구에 따라 반도체란 당대 핵심 산업을 보호하지 못한 게 경제 동력 상실의 주요인이 됐다고 본다. 정치·사회적으로도 변화보다는 현실 안주를 택한 보신주의가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우리가 일본에게 배워야 하는 건 바로 이런 부분들이 것이다.

외국과의 협상은 언제나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이 돼야 하며 그 과정에서 갈등을 이겨낼 국방력과 외교력 또한 갖춰져야 할 것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현실을 직시하고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갈 공동체 정신과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의 장기 침체와 그 기간 쌓인 여러 데이터는 분명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100여년 동안 한국은 원치 않게 너무도 많은 걸 일본에게 내줬다. 그리고 그 상처가 양국 관계 개선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일본에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면 최대한 얻어내야 할 것이다. 

여담으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를 통해 과거사를 넘어선 한일 관계 구축을 강조했다. 한미일 삼각공조를 통한 대북 대중 억제력 확보의 필요성 차원에서 나온 말이라 본다. 현 정권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 및 이를 통한 자유 진영 내 한국의 입지 강화를 모색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게 크게 놀랍지도 않은 발언이었다.

다만, 진정으로 현 정부가 한일관계의 발전적 변화를 기대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인정할 만한 그럴싸한 이유라도 찾아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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