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부터 조선까지…외출 때마다 불안에 떠는 국민들
일본은 사태파악·심리지원 나서…선진국 사례 참고해야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 사진=뉴시스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피의자 조선.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이종주 기자] 최근 정유정 살인사건부터 신림동 성폭행, 신림동 흉기난동,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흉악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외톨이형 범죄가 증가하면서 전문가 사이에서는 "강력한 처벌과 사회적 안전망이 동시에 기능해야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성폭행 피의자 최윤종(30)은 범행 전까지 주로 자택과 PC방을 오가며 은둔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의 통화내역에는 친구로 추정되는 인물과의 통화 기록이 거의 없고, 음식 배달을 위해 식당에 전화를 건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주목할 지점은 최씨뿐 아니라 최근 발생한 흉악범죄 피의자들 상당수도 유사한 특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경기 성남시 서현역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최원종은 대인기피증으로 학교를 자퇴한 뒤 홀로 생활했고, 과외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만난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도 고교 졸업 후 5년간 타인과 교류 없이 살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묻지마 칼부림 사건 피의자 조선도 전과 등으로 인해 취업이 어려웠고, 술에 의존하며 친한 친구가 없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3~6개월간 은둔 상태를 지속한 사람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르는데, 최근엔 청년층에서 이 같은 은둔 생활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3월 국무조정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9~34세 청년 중 집에만 있는 은둔 청년이 2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5월 보고서를 통해, 고립청년이 2019년 34만 명에서 2021년 54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은둔형 외톨이 중에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혼자 지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철저히 고립된 상황에서 왜곡된 생각을 교정할 기회가 적다는 특징 탓에, 일부 외톨이들의 돌출 행동이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수년간 지속된 코로나 거리두기 상황이 은둔 청년 문제를 심화한 만큼, 극단적 범죄를 자극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무차별 살인'의 정의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명확한 동기나 이유 없이 발생하는 살인을 뜻한다. 이는 안전한 사회의 기반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져, 사람들의 공포감을 크게 증폭시킬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라는 사회 문제가 점점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이 사회적 환경과 소통을 피해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드는 현상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로 지칭하며, 이들은 사회와 완전히 고립돼 가족마저 소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외톨이 현상을 보이는 인구 중 많은 수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이는 지난 2012년과 비교했을 때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는 사회 안정감의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증가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을 사회로 이끌어 내려는 논의는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고립·은둔 청년 발굴을 위한 실태조사를 지난달 17일에야 착수했다. 반면 일본은 2003년부터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는 용어를 정의하고, 사회복지법을 개정해 히키코모리를 복지 수혜 대상자에 포함시켰다. 특히 전국에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 79개소를 두고 히키코모리와 가족들에 대한 방문 심리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경찰의 특별치안활동 중 잇단 흉악범죄가 발생하면서 강경 대응만으로 범죄를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순찰 확대와 폐쇄회로(CC)TV 등 치안 강화 외에도 범죄자 분석 등 근본적 원인에 접근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특별치안활동이 2주가 넘은 22일 경찰은 강력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추가 대책안을 검토 중이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치안 역량 강화를 포함한 '묻지마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지시했고, 이날 오전 윤희근 경찰청장 등은 당정협의회에 참석했다. 윤 청장은 "지자체와 협조해 인적이 드문 장소에 우선적으로 CCTV를 설치하는 등의 보완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 관악산 등산로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흉악범죄가 발생한 지역이나 장소의 치안 강화에 집중돼 범죄 예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8일까지 경찰이 다중밀집장소 4만7260개소를 선정하고, 지역 경찰 및 형사 등 28만명의 인력을 배치했지만 범죄 발생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발생하는 강력범죄자의 심리 및 유형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신림동 무차별 칼부림 피의자 조선도 범행 전까지 지인이나 친구없이 외톨이 생활을 했다.

 

ㅅ
정유정 살인사건의 피의자 정유정. 사진=SBS

무차별 살상 범죄를 일본에서는 도리마(通り魔·거리의 악마) 범죄라 부른다. 대표적 도리마 범죄로는, 2008년 6월 일본 도쿄 전철 아키하바라역 부근에서 가토 도모히로(당시 25세)는 트럭을 몰고 대로로 돌진한 뒤 차에서 내려 주변 사람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가토는 범행 직전까지 일본판 '디시인사이드'인 온라인 커뮤니티 '2ch'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1000건 넘게 올렸다고 한다. 검거 이후에는 "삶에 지쳐서 그랬다", "세상이 싫어졌다"고 진술했다.

2001년 6월 8일 일어난 이케다 초등학교 살상 사건도 있다. 칼을 든 괴한이 수업 중인 초등학교 교실에 침입했다. 초등학생 8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다. 범인 다쿠마 마모루(범행 당시 38세)는 전과 15범으로 중졸에 무직이었다.

아키하바라 살상 사건의 범인 역시 20대 남성이었다. 2008년 6월 8일 20대 남성 가토 도모히로(당시 26세)가 2t 트럭을 몰고 도쿄(東京) 아키하바라 상점가로 돌진했다. 마침 당일 아키하바라는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의 날이었다. 범인은 트럭으로 행인들을 친 다음, 차에서 내려 흉기를 휘둘렀다.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토는 직업은 있었지만, 비정규직 사원으로 계약 해지를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 두 사건은 7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날(6월 8일) 일어나 6월이 되면 일본에서 함께 자주 언급된다.

2012년 6월 11일 일본 오사카에선 행인 두 명이 칼에 찔려 사망했다. 범인은 당시 36세의 이소히 교조(礒飛京三).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살인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고 진술했다. 이케다 초등학교 살상 사건의 범인 다쿠마 마모루도 어릴 때부터 강간, 스토킹, 폭행 등 중범죄를 끊임없이 저질렀다.

미국은 1940년대부터 대량 살상 범죄가 자주 일어났다. 여러 명을 살해하는 범죄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대량 살인, 연속 살인, 연쇄 살인이다. 대량 살인(Mass killing)은 단일 사건에서 3명 이상을 살해하는 것을 뜻한다. 2007년 일어난 버지니아공과대 사건을 들 수 있다.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는 대학 건물에 침입해 32명을 살해했다.

연속 살인(連續殺人·Spree Killing)은 시간적 간격이 거의 없이, 여러 장소에서 두 명 이상의 피해자를 살해하는 범죄를 뜻한다. 2002년 일어난 벨트웨이(Beltway) 저격 살인이 대표적인 예다. 존 앨런 무하마드(당시 41세)와 존 리 말보(당시 17세)는 주차장, 주유소, 쇼핑몰 등에서 행인들에게 총을 쐈다. 한번에 대량 난사하는 식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 한번에 한 명씩 저격하는 식으로 죽였다. 2002년 2월부터 10월까지 17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연쇄 살인(Serial Killing)은 같은 범죄자에 의해서 발생한 2건 이상의 구분된 살인이다. 사건 사이에 냉각기가 존재한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모티브였던 테드 번디를 들 수 있다. 그는 주로 여대생을 죽였다.

이런 폭력적인 성향이 감경이나 면죄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히면 사이코패스(Psychopath) 여부를 크게 보도한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 테스트 결과에 집착하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00년대 초부터 이상동기 범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사회적 고립을 지목하고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용어를 정의, 이들에 대한 실태 파악과 심리 지원 등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현황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실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에서야 고립·은둔 청년 발굴을 위한 실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범죄자의 행동엔 패턴(Pattern)이 있는 만큼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도리마 범죄가 빈발하자 일본이 시작한 게 바로 통계 작성이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예방적 대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일본 정부는 무차별 살상을 뜻하는 도리마 범죄가 2008년 역대 최다인 14건을 기록한 뒤,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한국처럼 사후적 강경책도 있었지만, '소년의 건전 육성과 고립된 젊은이의 사회참가 촉진' 등 외톨이 관련 대책도 함께 포함했다. 2013년부터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은둔형 외톨이) 대책 추진 사업'을 통해 지역지원센터에서 상담도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이 무차별 살상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15~64세 인구의 2% 남짓인 14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7월에도 오사카 간사이 공항을 향하던 전철 안에서 30대 남성이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여 3명이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잠정적인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되지만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해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정부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을 사형제에 대한 대안으로 내놓고 있지만, 피해자 유족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사형제를 찬성하는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형제 부활과 함께 '은둔형 외톨이'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묻지마 범죄 관리·감독 대책'을 보면 법무부는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하게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보건복지부는 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2025년부터 정신건강 검진 주기를 단축하고 조현병 등도 검진 질환군에 포함하기로 했다. 정신질환자가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지방자치단체장에 의한 행정입원이나 외래치료 지원 제도도 내실화한다는 방침이다. 정신질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도 확충하기로 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