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헬렌 캘러와 앤 설리번 선생님. 
8살 헬렌 캘러와 앤 설리번 선생님.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식과 기술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담당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 서로 다투거나 싸우는 일이라도 발생하면, 교사는 유능한 경찰, 훌륭한 변호사, 공정한 판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교사의 임무는 학생들을 수사하거나 변호하고, 냉엄한 판결을 내리는 일이 아니다. 교사는 항상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적인 해결을 모색해야 하며, 그에 대한 교육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헬렌 켈러의 성공은 20세기 교육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헬렌 켈러의 교육은 앤 설리번 선생의 믿음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앤 설리번이 어느 날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사랑하는 앤, 마침 네게 적당한 일자리가 있어서 급하게 편지를 쓴다. 켈러 씨 집 가정교사인데, 그분의 딸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앞을 못 보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 하는 아이란다." 삼중의 장애를 안고 있는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로 누가 지원을 하겠는가?

헬렌 켈러는 1887년 3월 3일, 앤 설리번 선생이 자기 집에 도착한 날을 '내 영혼의 생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자신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날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자기를 찾아온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한 사랑의 교육도 자아가 강한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이 오랫동안 격렬하게 싸운 끝에 이루어졌다. 헬렌 켈러는 심한 열병을 앓고 난 후 두 눈과 두 귀를 잃었으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딸의 불행에 너무나 마음이 아픈 부모는 딸의 난폭한 성격과 짜증을 그대로 받아 주었다. 헬렌은 자기 접시의 음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음식도 두 손으로 마구 집어 먹곤 했다. 설리번 선생은 헬렌의 이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고, 식사할 때에는 의자에 앉아서 포크를 들고 제대로 먹도록 요구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냅킨을 접고 나서야 식탁을 떠나는 것을 허락했다. 화가 난 헬렌이 설리번 선생을 때리고,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소리를 질러댔다. 식사 시간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헬렌의 부모는 설리번 선생을 무시하고, 헬렌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설리번 선생, 그 아이는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해요. 더구나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불쌍한 아이잖아요?" 장애의 고통을 겪고 있는 불쌍한 딸을 친절하게 도와주기는커녕 식사예절을 가르치겠다고 식탁에서 사투를 벌이듯 싸우는 가정교사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헬렌의 아버지는 설리번 선생을 당장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동정심 때문에 헬렌은 버릇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헬렌을 데리고 당분간 집을 떠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저와 헬렌이 둘이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설리번 선생은 가족이 없는 곳에서 헬렌과 단 둘이 지낼 것을 요구했다. 설리번 선생은 자녀를 키워 본 경험조차 없는 20대 초의 젊은 교사가 아닌가? 그렇지만 설리번 선생에게는 헬렌의 교육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으며, 헬렌이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어엿한 한 인간이라고 굳게 믿었다. 헬렌 켈러의 부모는 결국 설리번 선생을 믿고 그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설리번 선생의 믿음대로 헬렌은 품위 있게 식탁 예절을 지키는 멋진 소녀로 성장한다. 얼마 후 헬렌은 놀랍게도 언어의 신비를 깨닫게 된다. 설리번 선생이 우물에서 헬렌의 손등에 물을 대주며, 다른 손에 '물'이라고 썼다. 그때 헬렌은 펌프에서 쏟아지는 물질이 '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헬렌은 그때부터 지칠 줄 모르고, 배우고 또 배웠다.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헬렌 켈러를 '어엿한 한 인간'으로 믿고 그를 가르친 설리번 선생은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교사이다. 장애인 딸을 냉정하고 엄격하게 가르치는 교사를 신뢰하며 오래 참고 기다린 헬렌 켈러 부모의 믿음 또한 참으로 위대하다. 이와 같이 교사와 학부모는 함께 믿음으로 새로운 세대를 키우는 교육의 동반자가 아닌가?

/ 유원열 목사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