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개인전 '내리고 날리니 바라보고 다시피고' 개최

12일 '내리고 날리니 바라보고 다시피고' 전시회에서 만난 남학현 서양화가. 사진=김지원기자
12일 '내리고 날리니 바라보고 다시피고' 전시회에서 만난 남학현 서양화가. 사진=김지원기자

미술계 곳곳에서 탈장르를 선포하는 화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장르' 라는 틀로 한정 짓기에 모호해졌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현대미술은 이미 오래전인 1960년대부터 그 외현을 넓혀나가기 시작해 표현도구 뿐만 아니라, 표현영역과 주제도 다양화되고 개별화됐다. 색채나 소재, 기법 등이 복합적으로 엮인 것을 넘어 이제는 그 표현 목적과 철학마저도 어떤 한 장르로 구분 짓기에 명확하지 않다.

이 같은 미술 풍조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서양화, 동양화, 구상화, 추상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작품을 그리며 어느새 10번째 개인전을 개최한 남학현 화가를 만나 이 같은 시대 변화와 화가 스스로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하는지 들어봤다. 

◆ 이번이 10번째 전시회다. 이전엔 인물화를 주로 전시했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작품 활동에 변화가 생긴 이유가 무엇인가?

본가에 자개장이 하나 있다. 평소에는 자개장을 그냥 집에 놓인 가구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십장생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때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겠다고 깨달았다.

최근 아크릴물감 냄새로 인해 신경에 문제가 생겨 산책을 자주 했다. 집 근처 공원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꽃, 느껴지는 바람 등이 모두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은 자연만큼 편안함을 담아내지 못한다.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 편안함이기 때문에 내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연을 전시회 주제로 선택했다.

◆ 과거 십장생은 동양화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요즘 작품 중에는 서양화인데도 십장생이 등장하는 경우가 꽤 있다. 남학현 화가 또한 서양화가지만 동양 채색화 기법을 고집한다고 알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2000년대 초반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에 대한 관심이 컸었다. 동양화에 대해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고려대학교 정종미 교수님께 간곡히 부탁해 동양화 수업을 들었다. 수업 중 동양 채색화기법에 대해 알게 됐고 빨강, 파랑, 노랑 등 여러 색깔을 겹겹이 쌓아 색깔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내게 큰 매력을 다가왔다.

서양에서 사용하는 물감은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동양에서 쓰는 안료는 직접 만들어 쓴다. 약재나 꽃을 사용해서 천연색깔을 뽑는데 서양물감처럼 공장에서 찍어 내는 게 아니다보니 항상 똑같은 색깔이 나오지 않는다. 안료를 만들고 있으면 내가 미술이라는 요리를 하는 기분이 들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든 과정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겹겹이 쌓아 만든 색깔들은 오랫동안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꽃무릇 no.07 (2023) 사진=남학현
꽃무릇 no.07 (2023) 사진=남학현

◆ 동양 채색화 기법의 영향 때문인지 남학현 화가의 작품은 서양화와 동양화의 모호한 경계에 서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동양화에 관심이 많지만 내 작품들은 서양화에 가깝다. 동양화는 종이, 붓, 먹, 안료 등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서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아크릴물감이 더 익숙하다. 현재는 아크릴물감으로 동양 채색화 기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크릴물감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동양과 서양이 만나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이젠 동양화, 서양화의 구분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누군가는 서양화 캔버스에 동양화의 재료인 붓, 먹 등을 이용해 작품을 그려내고 누군가는 종이 한지에 서양물감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낸다. 현대미술은 모든 장르가 복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됐다.

◆ 구상화와 추상화의 구분이 어렵자 화단에서는 이 둘을 합쳐 '반추상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다. 남 화가의 작품은 구상화와 추상화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 '반추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반추상화'를 그린 이유가 무엇인가?

미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화가, 큐레이터 등 전문인이 아닌 이상 일반 관람객들은 작품을 감상하며 위안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추상화는 무엇을 그렸는지 바로 알아채기 어렵다. 가끔 내게 이해하기 어렵다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관람객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의 작품이 누군가에겐 스트레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최대한 관람객들이 내가 뭘 그렸는지는 알아차릴 수 있게 형태를 살려서 그리고 있다.

◆ 반추상은 기존의 대상을 왜곡, 변형함으로써 화가의 관념이나 정서를 나타낸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학현 화가의 작품 중에도 기존의 대상과 다르게 재현한 작품이 있는가?

내리고 날리니 바라보고 다시피고 (2023) 사진=남학현
내리고 날리니 바라보고 다시피고 (2023) 사진=남학현

반추상의 대표적인 화가 이중섭의 작품 중 '흰 소'는 거친 붓놀림으로 흰색 선을 칠해 소의 강한 힘을 표현해냈다. 나의 작품도 비슷하다. 사슴을 대상으로 한 작품 '내리고 날리니 바라보고 다시 피고'는 사슴의 부드러운 힘을 강조하고자 했다. 사슴의 예쁜 눈망울을 보면 힘없이 잡아먹힐 것 같지만 높게 솟은 뿔로 인해 동물들은 사슴을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사슴을 표현할 때 당차고 기개가 넘치며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거친 붓질이 아닌 부드러운 붓터치를 살리기 위해 아크릴 물감에 겔 미디엄을 많이 섞었다. 또, 사슴의 밝은 에너지를 상기시키기 위해 노란색을 사용했다. 다른 예로는 '꽃무릇'이라는 작품인데 햇빛이 땅에 비친다는 설정을 추가해 흰색 점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연의 포근함을 담으려고 했다.

◆ 남학현 화가의 작품들은 대체로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아 추상적인 분위기가 더 살아난다. 인물의 이목구비를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있는가?

인물화를 전시할 때면 그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 묻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그러나 누굴 그렸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인물에 표정을 그리면 인물의 감정이 너무 명확해져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된다. 나는 관람객들이 내 작품의 색감이나 붓 터치 등을 보고 인물의 감정이나 작품의 분위기를 느꼈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일단 전시회를 잘 마무리 하는 것이 목표다. 이후에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생각이다. 아직 향후 전시회 계획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또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전시회를 개최하는 데 힘을 쏟을 예정이다.

남학현 화가의 '내리고 날리니 바라보고 다시 피고'는 오는 23일까지 엠 컬렉트 나인틴(서울시 종로구 경희궁길 36 201호)에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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