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김혜진 소설가, 단편집 '축복을 비는 마음' 출간
집을 매개체로 우리 주변의 갈등과 대립, 치유 이야기 담아

 사진= Ⓒ김승범
 사진= Ⓒ김승범

예전에는 집을 떠올리면 따뜻한 느낌이 강했다. 따뜻한 온기, 밥, 가족의 사랑 등이 집이라는 이미지를 구성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전세사기, 집주인과의 갈등, 층간소음 등 여러 사회문제와 엮이면서 집의 이미지는 차갑기만 하다.

김혜진 소설가의 신작 '축복을 비는 마음'에 담긴 '미애', '20세기 아이', '목화맨션', '이남터미널', '산무동 320-1번지', '자전거와 세계'는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집 하나로 인간관계에선 모진 말들이 오고 가고 본의 아니게 서로를 깔보고 미워한다.

다행히 소설은 끝을 향해 달려갈 수록 희망을 노래한다. 마지막 챕터인 '사랑하는 미래'와 '축복을 비는 마음'은 이상적인 집의 따뜻함을 전달한다. 모두가 꿈꾸던 집의 모습은 마지막 장에서야 모습을 드러나는 것이다.

김혜진 소설가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다. 집을 상품으로서 재화로서 보는 것을 넘어 집의 본질을 꿰뚫으라고 일침을 날린다. 그녀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지난 8일 문학과 지성사 사옥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이전 작품인 중앙역, 불과 나의 자서전 등 집과 관련된 내용을 주로 창작했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집을 주제로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처음에는 집에 대해서 단편을 써볼까라는 생각에 시작했다. 이번에 수록된 '이남터미널'과 '산무동 320-1번지'가 2019년에 창작한 작품으로 가장 먼저 쓴 작품이다. 그때는 막연하게 집에 대해서 써보고 싶었다.

이전 작품에서는 집의 외관이나 내부 모습 등 집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후의 작품부터는 집이라는 개념이 넓어졌다. '자전거의 세계'와 같이 이야기 초반에는 집의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지만 끝 부분에 가서야 '아 집과 관련된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을 독자들이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포괄적인 이미지가 됐다고 보면 될 것 같다.

◆ 요즘 부동산 관련해서 이슈가 많다. 집이라는 공간은 유난히 한국인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사는 공간을 넘어 이젠 성공의 기준이 됐다. 내 집 마련이 모두의 꿈이 되고 아파트의 브랜드에 따라 서열이 나뉜다. 한국에서 집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가?

인구수에 비해 좁은 영토라는 점이 한국인들에게 경쟁심을 부추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이 인구 밀집도가 높은 편이지 않나. 외국은 영토가 넓다보니 자기의 공간을 가질 기회가 많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각자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20~30대, 40대, 50대가 생각하는 집이 다를 것이고 지역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고 주거 형태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참 다양하다. 집은 삶과 가장 맞닿은 존재이면서 각자만의 고민, 가정사, 가치관 등을 품고 있다. 그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어 현실을 꼬집는 것이 소설가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문학과 지성사
사진=문학과 지성사

◆ 각자 생각하는 집의 의미가 다르다고 했는데 김혜진 작가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집에 대해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집에 대한 욕심이 크다보니 예전에 나는 내가 사는 집이 대체로 불만족스러웠다. 더 좋은 집, 깔끔한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서의 사건 혹은 관계가 그걸 채워준다고 생각한다.

지나고 보니 좋은 기억만 남더라. 이사 갈 때쯤 이 집에서 있었던 좋은 추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집의 외관보다는 집과 함께 있었던 추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 책을 쓰기까지의 기획부터 취재, 창작 과정이 궁금하다.

예전에 2년 동안 전세를 살던 동네가 재개발이 진행된 적이 있다. 쫓겨나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빨리 집을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점점 비어가는 집들, 어디로 이사 가야할지 고민하는 이웃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소설로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시작하게 됐다.

모든 소설들이 그렇듯 모두 경험에서 우러나오기보다는 일상에서 힌트를 얻는다. 소설을 출발은 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나 예상치 못한 사건들에서 주로 시작된다. 당시 '이걸 써야지'하고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일상에서 들었던 이야기, 느꼈던 감정이 소설을 녹아 있다.

소설에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서 전화 취재도 했었는데 '축복을 비는 마음'을 기획할 당시 청소업체에 전화를 해서 근무인원, 근무시간, 직원 모집 방식 등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 위해 꼼꼼히 물어봤었다. 이외에도 '자전거와 세계'의 등장인물이 치위생사여서 치과 업무를 알기 위해 관련 서적, 인터넷, 유튜브 등을 보며 공부했다.

◆ 부동산 관련 정책이나 법에 대해서도 공부했는가?

요즘에는 전문가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도 부동산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다 보니 콘텐츠가 잘 돼 있다. 소설을 쓰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인터넷, 유튜브 등을 찾아보면서 지식을 쌓았다.

◆ '딸에 대하여'를 포함해 김혜진 소설가는 사회적 약자에 관한 작품을 대체로 썼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부동산 소유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부동산 소유주는 사회적 약자라기보단 소유권이라는 권력을 가진 인물이 아닌가?

사회에서는 흔히 집주인은 갑이고 세입자는 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분법으로 쉽게 나눠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집주인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대단히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사회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권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유권이라는 게 권리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소유주들이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부자일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들도 평생을 힘들게 모은 돈으로 집을 샀지만 부동산 정책, 재개발 등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힘없는 서민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 수록작 '목화 맨션'에는 재개발이 되길 바라는 소유주와 재개발이 안 되길 바라는 세입자가 등장한다. 이소 문화평론가는 이를 소유의 불안과 생존의 불안이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김혜진 소설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소유의 불안과 생존의 불안 모두 무엇이 먼저라고 말할 수 없다. 제 3자의 입장에선 생존이 더 중요하다. 생존이란 걸 해야 소유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세입자 또는 소유자가 된다면 본인의 문제가 당연히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생존이 중요하다고 해서 소유자의 재산을 막무가내로 침해할 수는 없는 문제이지 않나. 개인에게 옳고 그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가 세입자와 소유주 간의 권리를 최대한 서로 침해하지 않고 지킬 수 있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 이번 작품은 특히나 갈등이 많은 것 같다. 앞서 말한 소유자와 세입자 간의 갈등처럼 어쩔 수 없이 갈등을 겪는, 서로에게 무해하고 싶지만 유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겼다.

모든 관계가 아무리 가깝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한 100% 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책의 마지막 장에 수록된 이소 평론가의 해설이 참 좋았다. 이 책을 통해 무해함보다 유해함이, 차단보다 충돌이 우리에게 훨씬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라는 걸 믿어보자는 것 말이다.

각자의 입장이 달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삶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항상 좋은 영향만 줄 수는 없다. 나 또한 항상 상대방에게 좋은 영향만 받을 수 없다. 심지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당장 알 수 없다. 유해한지 무해한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김지원 기자

◆ 이 책을 통해서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이번 작품이 집에 대한 내용이니 그동안 내가 지나왔던 집들, 집이라는 공간에서 겪었던 일들과 같이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마움, 힘듦, 미안함 등 집과 관련된 다양한 감정들을 떠올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소설을 꾸준히 쓰는 것이 내 목표이다. 내년에는 장편 원고를 마무리할 예정이고 얼마 남지 않은 올해는 단편 소설을 늦지 않게 마감하는 것이다. 8개 정도의 단편을 모아 또 다른 단편집을 출간할 예정인데 아직 하나밖에 쓰지 않아서(웃음) 부지런히 써야 한다. 지금은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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