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철 목사
주기철 목사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1944년 감옥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가 감옥에서 잠시 풀려났을 때, '5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마지막 설교를 하였다. 주 목사는 그 설교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장기간의 고난을 이기기 어렵다고 고백하면서, 연로하신 어머니와 병약한 아내, 그리고 어린 자녀들에 대한 애절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약한 아내와 어린 자녀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 중에도 애통해하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네 어머니시다!" 부탁하지 않았던가?

노모와 병약한 아내와 자녀들을 버려두고 수감생활을 하는 주 목사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아버지가 반역자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하면 자식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걱정하며 죽음의 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마음은 한없이 처절하다.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같은 마음이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이 목메어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순교의 신앙을 지킨 주기철 목사조차도 감옥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을 향한 마음이 이처럼 애절하기 그지없다.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이경림 대표가 수용자 자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꼭 안아주세요」를 발간했다. '세움'은 이 땅의 지극히 어려운 아동들 중에서 특별히 '수용자 자녀'들을 품고자 한다. 수용자 자녀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부모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이유로 수치심 속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이들이다. '세움'은 지난 2015년부터 지금까지 331명의 수용자 자녀를 만나고 있다고 한다. 부모의 범죄로 인해 사회에 대해 마음을 닫아걸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부모가 교도소에 갔다는 이유로 동일한 형량의 수치심을 느끼며 마음의 문을 닫은 아이들을 돕는 손길이 없었다. 교도소에 있는 부모는 남겨진 자녀들이 얼마나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지, 아이들에게 부모의 존재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가족이기에 가족의 이름으로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는 아동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세움'은 '수용자 자녀가 당당하게 사는 세상'을 함께 세워가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모든 아동은 부모의 죄의 유무나 조건과 관계없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천부의 인권에 따라 당당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부모의 수감으로 빈곤과 심리적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아동이 약 6~7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부모의 잘못으로 '수용자 자녀'라는 이름의 낙인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경림 대표가 수용자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서 교도관에게 수용자들의 구체적인 상황과 범죄 내용을 알려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교도관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30년 동안 교도관 일을 하고 있지만, 신입 수용자들의 범죄 내용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범죄 내용을 보는 순간 그 사람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이지 않고, 오직 '죄인'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자 가족이나 아이들을 만날 때 범죄 내용을 알게 되면 그 가족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으니, 수용자의 범죄 내용을 모르고 가야 그 가족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생의 역경 속에서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가 그 역경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아무런 죄가 없는 수용자 자녀들은 우리의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입고 있지 않은가?. "아, 그렇구나. 우리가 품고, 세우고, 안아줘야 할 아이들이 있구나, 이 아이들이 기댈 든든한 어깨가 필요하구나." 수용자 자녀들이 숨겨진 피해자요, 잊혀진 피해자라는 사실을 이제야 깊이 깨닫는다.

/ 유원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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